31년차 부부인 케이(메릴 스트립)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의 열정은 식은 소갈비 요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오랜 각방살이에 익숙해진 아놀드는 서로 마주보지 않고 대화하는 데 귀재이며, 아내 얼굴보다 신문이나 골프 채널을 응시하는 편이 편한 50대 남자다. 그와 “한방을 쓰는 것도 아닌 기숙사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던 케이는 욕구불만이 한계에 달하자 결단을 내린다. 고이 모아뒀던 4천달러짜리 채권을 털어 버나드 펠드 박사(스티브 카렐)의 상담 프로그램에 딱 1주 동안만 자신들의 운명을 의탁해보자는 것이다.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위기의 중년 부부를 위한 자기 계발서를 단계별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들의 부부생활 구원 프로젝트가 설득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배우들의 덕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어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과 다시 손을 잡은 메릴 스트립은 중년 여성의 현실과 환상 사이에 가교를 놓는 데 탁월하다. 그녀의 케이는 ‘마누라’와 ‘여자’의 중간쯤 서서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조련의 기술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 ‘남편 길들이기’ 서사에 변곡점을 찍어내는 것은 역시 토미 리 존스의 아놀드다. 서사의 전진은 ‘투덜이 스머프’류 연기의 일인자인 그가 상대역의 애무에 표정을 녹이거나 제대로 된 근육을 사용하여 진짜 미소를 지을 때 이루어진다. 그는 긍정의 힘에 경도된 드라마에 균형을 부여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랭클 감독의 연출 감각은 주춤한 편이다. 7년 전 그는 20~30대 커리어우먼을 위한 맞춤정장 같은 영화로 칙릿무비의 성공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 출신답게 여성의 사회적 야망과 내밀한 생리를 결합한 이야기에 나름 일가견도 보였다. 그러나 그가 40~50대 여성의 중년 로맨스 판타지에 손 댄 순간 마법은 사라져버린 듯하다. 중년 여성의 성욕과 힐링에 더 확실히 방점을 찍은 것은 더 솔직하고자 한 시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성의 드라마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정글로 뛰어든 여자들의 복잡한 정치학 같은 것은 끼어들 자리도 없다. 그녀도, 그녀의 욕망도, 세상과 유리된 듯 집과 성(性) 안에서만 맴돈다.
당연하게도 희망이 싹트는 곳은 안방이다. 그들의 재결합은 어두컴컴한 극장이나 외딴 모텔과 사치스러운 호텔을 돌고 돌아 결국 안방에서 정상 체위로 치러진다. 섹스라는 기술을 통해 가족제도로 복귀하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다. 따지고 보면 남편과의 건강한 섹스 라이프를 되찾으려는 케이의 목표도, 그녀에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입하는 펠드 박사의 목소리도 무척 온건하다. 그런 탓인지 <호프 스프링즈>는 중년들이 ‘섹스’를 부르짖는 영화지만 해방감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외설적이지 못한 그 일탈이 다소 아쉬운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