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끊임없이 파생되는 인간의 욕망 <끝과 시작>
2013-04-03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영화는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가 서로의 몸을 채찍질하는 가학적인 정사장면으로 시작한다. 자동차 안에서 위험한 정사를 즐기던 그들은 결국 교통사고가 나고 재인이 죽게 된다.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내 정하(엄정화)에게 나루가 곁에만 있게 해달라며 찾아오고 둘은 결국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영화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이야기 구조와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을 비튼다. 영화의 서사는 크게 두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과 정하는 정하의 집에서 술을 더 마시게 되고 재인은 정하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재인과 정하, 나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흔히 봐왔던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것 같지만 영화 속 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5년 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인물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 재인이 죽고 나루가 찾아오면서 끝인 줄 알았던 세 사람의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죽은 재인은 죽지 못하고 유령이 되어 집에 계속 머문다. 정하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나루가 정하의 집에 들어오게 되는 방식은 마술적 힘에 의해서다. 정하의 집에 카드가 배달된다. 유령인 재인이 카드에 물을 주면 카드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나루는 그 속에서 튀어나온다. 세 사람은 이제 같이 살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서로 다른 공간이다. 인과관계의 고리로 짜맞춰져 이어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직선적인 시간도 파괴된다. 5년 전 이야기는 현재가 된다. 우리의 삶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 속에서 파생되는 끊임없는 인간 욕망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겉돌거나 뒤로 가거나 앞뒤가 맞지 않게 움직이는 우리 삶의 형식을 보여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