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니콜 감독의 전작 <인 타임>(2011)은 시간을 화폐로 설정한 아이디어만 인상적인 SF영화였다. 산으로 올라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가타카>(1997)에서 보여준, SF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는 재능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가 이번에 내놓은 <호스트> 또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로맨스영화다. 폭력도, 굶주림도 사라진 평화로운 지구. 그러나 지구는 더이상 인간의 터전이 아니다. 인간의 뇌에 침투해 몸을 조종하며 살아가는 ‘소울’이라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멜라니(시얼샤 로넌) 역시 거세게 저항하다가 결국 소울에 당한다. 소울은 멜라니의 몸에 ‘완다’를 집어넣는다. 사라졌어야 할 멜라니의 영혼이 되살아나면서 멜라니(혹은 완다)의 몸속에는 멜라니와 완다 두 인격체가 공존하게 된다. 멜라니는 자신의 육체를 지배한 완다에 맞서며 가족이 숨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헤어졌던 연인 제라드(맥스 아이언스)와 동생 제이미(챈들러 캔터버리)를 다시 만난다.
복잡한 줄거리만큼이나 영화는 SF와 로맨스 사이를 갈팡질팡한다. 멜라니가 가족이 있는 동굴을 찾아가는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멜라니와 완다 두 인격체가 하나의 신체에 공존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주로 그린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멜라니, 완다, 제라드, 이안(제이크 아벨) 네 남녀의 동굴 속 로맨스물로 변모한다. 여기에 동굴을 본거지로 삼은 저항군과 소울의 전투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황해진다. ‘진정한 평화에 필요한 건 친절함과 사랑’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설파하기 위해 영화는 너무나 많은 길을 돌고 돈다. 그 점에서 <호스트>는 SF도, 로맨스물도 아닌 어중간한 영화가 되었다. <트라일라잇> 시리즈를 쓴 스테파니 메이어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