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에 대한 자기 반영적 결과물 <홀리모터스>
2013-04-03
글 : 송경원

한 남자가 차에 탄다. 여러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그는 한 사람이다. 고급 리무진 홀리모터스를 타고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곳곳을 누비는 이 남자의 이름은 오스카(드니 라방). 그는 차에서 내릴 때마다 유능한 사업가가 되고, 가정적인 아버지가 되고, 모션 캡처 배우가 되고, 광대가 되고, 거지가 되고, 암살자가 되고, 광인이 된다. 종국에는 영화라는 움직임으로 남는 아홉번의 삶. 아홉번의 동력. 홀리‘모터스’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폴라 X>(1999) 이후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채 한때 세상에 부적응한 몰락한 천재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13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온 그는 드디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세간의 관심과 찬사가 다시 모아졌고, <홀리모터스>는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2012년의 영화로 기록되었다. 오랜 고독 속에서 침묵을 깨고 돌아온 그의 목소리는 육중하고 무거운 기계 장치, 그러니까 실재하는 것 안에 잠들어버린 영화의 혼을 다시 끄집어낸다.

한 인물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지만 이를 오스카란 인물이 행한 연기라고 일축하긴 힘들다. 실제의 삶과 연기된 삶이 수시로 겹치고 흩어지길 반복하는 가운데 뚜렷한 존재감을 확보해나가는 것은 오히려 임시적이고 연기된 가상의 삶들이다. 일견 연기된 것, 가상의 존재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나타내려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사는 것도 사는 척하는 것도 모두 삶의 일부이기에 이것들이 뒤섞이는 과정은 관객에게 혼란보다는 차라리 황홀함을 안긴다. 그 와중에 실재와 가상의 틈새로 ‘영화의 역사’가 용광로 쇳물처럼 들이부어지고 결국 영화에 대한 자기 반영적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홀리’모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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