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브래드 피트] 야심만만 냉혈한
2013-04-08
글 : 주성철
<킬링 소프틀리> 브래드 피트

“그분이 이름을 적고 있네. 누구를 풀어주고 누구를 벌할 것인지. 모두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을 것이네. 황금 사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그분이 오시는 날.” 너무나 절묘한 선곡인 조니 캐시의 <The Man Comes Around>에 맞춰 브래드 피트가 등장한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대며 오직 옆, 뒷모습으로만 등장하는 킬러 잭키 코건(브래드 피트)은 도박장을 턴 멍청한 도둑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용된 ‘집행자’다. 등장과 동시에 작업을 의뢰한 드라이버(<번 애프터 리딩>에서 같은 헬스클럽 동료였던 리처드 젠킨스)와 그저 미동도 없이 오직 차 안에서 긴 얘기만 나눌 뿐이지만 여전히 그는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이제껏 보기 드물었던 색다른 킬러의 모습이랄까.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얘기에도 아랑곳없이 한번 상대를 무심히 째려보고는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이제 올해로 그의 나이 딱 쉰살이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킬링 소프틀리>의 잭키 코건은 좀체 흥분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얼핏 실수처럼 여겨지는 일을 저질렀어도, 그저 깔끔한 일처리로 여겨지게 만드는 묘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똑같은 범죄세계에 속해 있지만 약에 절어있던 <트루 로맨스>(1993)나 사투리가 유창했던 집시 복서로 출연한 <스내치>(2000) 등과 비교해 무척이나 절제된 캐릭터다. 역시 앤드루 도미닉 감독과 이전에 함께했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의 제시 제임스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죄없는 아이를 때리고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와 비교해도 지극히 냉혈한이다. 또한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 스스로 잭키 코건에 대해 말하길 “도덕관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킬러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일종의 ‘사업’이라 생각하고 거침없이 행동한다. 나 역시 촬영현장에서도 스스로 킬러라고 생각하면서 큰 총을 갖고 다니기도 했다. 수시로 여기저기 쏴대는 흉내를 내며 촬영에 임했다”며 웃는다.

잭키 코건이 만나는 흥미로운 두 인물은 바로 도박장의 주인인 마키(레이 리오타)와 고용된 또 다른 킬러 미키(제임스 갠돌피니)다. 알다시피 마키와 미키, 그러니까 레이 리오타와 제임스 갠돌피니는 각각 마틴 스코시즈의 <좋은 친구들>(1990)과 TV시리즈 <소프라노스>의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의 계보학에서 영화와 TV를 대표하는 두 작품의 주인공을 불러다놓고는 말 그대로 박살을 낸다. 앤드루 도미닉 감독과 ‘플랜B’ 영화사를 이끄는 제작자 브래드 피트의 무모하리만치 야심만만한 ‘기획’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기존 갱스터 장르를 산산조각내겠다는 심산일까, 아니면 뒤늦게 이 장르에 매혹된 브래드 피트의 과욕일까. 그가 주연배우이자 제작자로서 <킬링 소프틀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자본주의의 지긋지긋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재정 위기를 들먹이는 TV 속 정치인들의 말이건, 인물들의 말이건 내내 ‘돈’ 얘기만 가득하다. “<킬링 소프틀리>는 도박판을 턴 도둑들의 뒤를 쫓는 킬러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범죄드라마이지만 경제 위기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마 다른 장르였더라도 이러한 내용은 포함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범죄사건이 결국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문제를 녹여낸 범죄드라마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전하는 TV 화면과, 여전히 별 다를 바 없는 잭키 코건의 모습을 맞물려놓은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바벨>(2006)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그리고 <트리 오브 라이프>(2011)와 <킬링 소프틀리>(2012)에 이르기까지 브래드 피트는 거의 매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배우 중 하나다. 아마 횟수로 따지면 수상과 무관하게 가장 자주 칸의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일 것이다. <킬링 소프틀리>의 잭키 코건은 그와 동시에 매번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는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집약된 캐릭터다. 어쨌든 그는 눈빛이건 수염이건, 혹은 미간의 주름이건 여전히 섹시하다. 이제 그는 초여름 블록버스터 <월드워Z>로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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