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사소한 반칙에서 비롯된 재앙 <디테일스>
2013-04-10
글 : 윤혜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딱인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더 알맞을지 모른다. 하룻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제프(토비 맥과이어)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에 비극을 덧칠한다. 산부인과 의사 제프와 그의 아내 닐리(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섹스리스 부부다. 제프는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마당에 잔디를 깔아 꾸며보지만 밤마다 잔디를 뒤집어놓는 너구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온 신경이 너구리 포획에 쏠린 제프는 오랜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레베카(캐리 워싱턴)에게 심중을 털어놓던 중 분위기에 휩쓸려 레베카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한편, 제프가 너구리를 잡기 위해 참치에 독약을 섞어 마당에 둔 것을 옆집 고양이가 실수로 먹어 급사하게 된다.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던 괴팍한 여자 라일라(로라 린니)는 제프의 불륜과 고양이가 죽은 사실을 빌미로 제프를 압박하고, 제프는 이 모든 일을 닐리가 알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라일라의 입을 막으려 애쓴다.

‘코너에 몰린 불안한 인물’을 연기하는 토비 맥과이어는 이번에도 탁월하다. 사실 이 모든 재앙은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제프의 사소한 반칙에서 비롯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인과응보다. 진짜 비극은 악몽의 돌파구가 될 줄 알았던 고해성사가 사실 아무런 힘이 없었음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제프는 끝내 모두의 행복을 위해 침묵하지만, 제프의 양심은 앞서간 많은 것들처럼 이 순간 죽어버린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이지 않은 ‘디테일’들은 영화의 재미를 돋우는데, 제프를 히스테릭하게 만드는 너구리의 이미지와 로라 린니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2004년 <민 크리크>로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제이콥 아론 이스터스 감독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감각이 빛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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