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마동석]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2013-04-19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공정사회><노리개>의 배우 마동석

인터뷰를 위해 찾은 삼청동 카페 안에는 이미 그가 <통증>(2011) 홍보 때 남긴 사인이 걸려 있었다. 모르긴 해도 최근 그가 새 출연작을 알리며 남긴 사인이 삼청동 곳곳을 장식하고 있을 터였다. 지난해 출연작이 우정출연작을 포함해 8편, 올해도 벌써 3편째다. 하지만 그는 “나한테 책(시나리오)을 주시는 분들은 그냥 다 고맙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와 작업해본 이들이 재차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도 그 우직함 때문 아닐까. 그 인연을 시험이라도 하듯 친분이 깊은 이지승 PD의 연출 데뷔작 <공정사회>와 김태훈 PD의 <노리개>(최승호 감독)가 4월18일 나란히 개봉한다. <공정사회>에서 아동 성폭행 사건을 묵인하는 막장 형사 마동철과 <노리개>에서 연예인 성상납 사건을 파고드는 열혈기자 이장호가 맞붙는 것이다.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선보인 배우 마동석은 한몸에서 태어난 마동철과 이장호 중 누구를 응원할까.

-자신이 출연한 두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것이 이젠 흔한 일이 됐다. <심야의 FM>과 <부당거래>, <퍼펙트 게임>과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댄싱퀸> <네버엔딩 스토리> 때도 그랬다.
=프로야구 선수한테 오늘 MVP인데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러잖나. 경기는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다. 내 페이스대로 했을 뿐이고 우리 팀이 이겨서 좋다. 일단 영화가 잘되는 게 먼저다.

-<노리개>가 마동석의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라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막상 보니 이장호 기자는 배후에서 판을 짜면서 다른 인물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역할이다.
=그동안 잠깐잠깐 나와서 무거운 분위기를 해소해주거나 정확하게 임팩트를 남기는 역할들을 많이 해왔잖나. 그래서 반대로 무덤덤하게 극을 전체적으로 끌고 나가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 책이 들어왔다.

-최승호 감독 표현에 따르면 분량의 주인공, 클라이맥스의 주인공, 상징적 주인공이 있는데 이장호는 그중 분량의 주인공이라 맡기기 미안했다더라.
=그것도 처음부터 알고 들어갔다. 실제로 처음에는 뭘 많이 할 것처럼 나오다가 별것 없이 영화가 끝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근데 사이사이에 이장호가 나와서 무언가를 하는 장면들이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살한 여배우의 다이어리를 숨기고 있는 매니저를 회유하는 장면도 그렇고.

-배후의 조력자라는 면에서, 영화 안의 이장호 기자와 영화 밖의 마동석이란 배우가 맡은 역할이 비슷하다. 특히 캐스팅에 큰 역할을 했다고. <공정사회>에서도 거의 기획 겸 캐스팅 디렉터였다던데.
=배우들이 개런티 없이 출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뜻이 있는 후배들을 소개해드렸을 뿐이다. 감독님이 배우 좀 추천해달라고 하면, 배우들한테 가서 말하기 좀 미안한데, 음, 알았어요, 뭐, 한번 말해볼게요, 하는 식이었지. 형사 친구가 많은 사람으로서 구체적인 디테일을 더해줄 수도 있었고.

-사건 사고 취재에 일가견이 있나보다.
=10년 전에 <히트>라는 드라마를 할 때 만났던 선후배 형사들과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다 보니 보고 들은 게 많다. 성폭행 피해자 취조하는 것도 본 적이 있을 정도니까. 마 형사는 그렇게 보고 들은 걸 짜깁기한 거다. 형사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서 직접적인 취재는 어려웠고. (웃음)

-이장호 기자는 <GO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를 모델로 했다던데, 그도 만났나.
=이상호 기자는 안 만났지만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사회부 기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분들이 사람들한테 물어보기 힘든 걸 어떻게 물어보는지 봤지. 웃으면서 물어보는 분도 있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분도 있고, 그냥 ‘돌직구’인 분도 있고.

-지인들을 통해 쉽게 취재 가능한 직업군이 얼마나 되나.
=음, 운동선수, 건달, 형사, 의사…. 음, 지금 생각해보니 좀 많네. 50편 넘게 작품을 하다 보니….

-어쨌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이장호는 부드러우면서도 능구렁이 같은 캐릭터다. 이전에는 폭력을 행사해도 우직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이었는데.
=그냥 단순무식하다고 말해도 된다. (웃음) 이장호도 기본적으론 대쪽 같은 사람일 거다. 근데 사람들을 대하는 기술이 많이 쌓여서 노련해진 거겠지. 그리고 파이터 기질을 가진 기자를 연기하면 경찰이랑 비슷해 보일 수 있어서 그런 여지를 주지 말자 싶었다.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켜드리기 위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참고 한 거다. 특히 “힘껏 부딪혀보아요”, “검사님, 잘했어요” 이런 걸 꼭 해달라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하려니, 참. (웃음) 근데 거기서 “아, 힘 좀 내요” 이러면 마동석이 되는 거니까.

-<이웃사람>에서 안혁모가 범인을 정말 ‘돌직구’로 패는 것만 편집한 영상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봤다. (웃음) 안혁모의 액션은 사람들이 근처에 가기도 싫어할 법한 범인을 아주 벌레 취급하면서 관객에게 통쾌함을 줘야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치욕적으로 때려야 했고, 당당하게 무력행사를 하는 인물이어야 했다.

-한국형 스릴러를 볼 때 매우 괴로울 경우가 있는데, <이웃사람>은 안혁모 덕분에 좀 편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맞다. 그 지점을 감독님이랑 거의 일년 넘게 상의했다. 난 분명히 그 지점까지 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잘못하면 나만 튀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나올 때마다 관객이 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건달 친구도 많은 사람으로서 강풀의 안혁모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강풀이 나보고 ‘형이 이 역할 하면 딱이겠다’고 했는데, 강풀도 그쪽 사람들하고 많이 생활해보고 쓴 게 아니고 극에 맞게 깡패 역할을 그려놓은 거라, 실제 사람이 라이브로 연기할 때는 다른 도구들이 필요했다. 외모, 말투, 자주 쓰는 은유, 뭐 그런 것들.

-<반창꼬>의 소방대장은 좀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오래 가깝게 지낸 친구들은 내가 <반창꼬>의 소방대장이랑 제일 비슷하다더라. 나는 사람 안에 착하고 나쁘고 세고 약한 게 다 있고 그중 하나가 때에 따라 세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친구들이 그나마 밝은 캐릭터를 닮았다고 해주니까 다행이다.

-현장을 좋아해서 들어오는 청은 웬만하면 수락하는 편이라고.
=현장에 있는 걸 편하게 느끼는 건 맞다. (잠시 생각) 운동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때도 집에서 쉬거나 여행을 가는 것보다 헬스클럽에 있는 게 제일 편했다.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게 힘들지만 거기가 내 터전 같고. 지금은 영화 현장이 그런 것 같다.

-현장에서 어떤 순간들이 희열감을 주나.
=그런 게 아니다. 그냥 거기 있는 느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은 거다. 나는 일이 없는 날에도 운동하고 땀 흘리고 하는 게 쉬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웃음)

-우정출연이 잦은 것도 그래서인가.
=(기자가 프린트해온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훑으며) <댄싱퀸> 때는 황정민 형이 전화해서 하루만 와서 게이 역할 하지 않겠냐고 하기에 ‘나한테 왜 그러세요’라고 그랬었는데. (웃음) <신세계>는 한재덕 PD님이에게 출연 제안을 받았었는데 시기가 잘 안 맞아서 못한 대신 하루 가서 한 거고. 근데 우정출연이 더 고민스럽고 힘들 때가 있다. 감독님이랑 계속 의논해온 캐릭터가 아니라 하루 가서 딱 재미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제작이나 기획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나한테는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근데 예전부터 이런 영화가 나오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며 구상해놓은 아이디어들이 있긴 했다. 어떤 건 캐릭터만 있고 어떤 건 스토리만 있었는데, 그걸 발전시키니까 영화가 되더라. 그래서 실제로 제작사에서 완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2개 있고, 고영훈 작가랑 웹툰으로 먼저 발표한 뒤 영화로 만들려고 계획 중인 아이템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기획도 하고 출연도 하는 영화가 나오겠지. 재밌을 것 같다.

-처음에 자신을 야구선수에 비유했는데….
=야구광이다. 어릴 때 꿈이 프로야구 4번 지명타자였다. 수비하기 싫어서.

-야구영화를 만들거나 <퍼펙트 게임>의 박만수보다 본격적인 야구선수 역을 해보고 싶진 않나.
=야구영화는 너무 힘들다. (웃음) 그리고 야구든 뭐든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영화로 안 만들어도 충분히 재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기획한다면 내가 즐겨 보지 않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차기작 목록으로 옮겨갔다. 배우 하정우가 ‘마동동’이라 부른다는 그는 이제 하정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다작 배우가 됐다. 2013년 개봉예정작들도 <감기> <뜨거운 안녕> <배우는 배우다> <더 파이브> <군도> <결혼전야> 등 창창하다. “아, <적설>이 빠졌네. 촬영 완료했고 과거에 연쇄살인범 전과가 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정신적 세계를 가진 인물이 흔히 볼 수 없는 리액션을 하는 게 어려웠지만 잘 나올 것 같다”고 하더니 금세 “가을에 좀 규모 있는 한국판 <테이큰> 같은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을 것 같다. 박희곤 감독과도 곧 한편 더 같이 할 예정이고”라며 두편을 추가했고, “아, <미스터 고>에서도 야구 해설자로 잠깐 나온다”라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최종 완성해주었다. 그 제목과 배역 이름을 친절하게 또박또박 적어주는 모습에는 피로보다 소박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그는 또 내일 그가 가장 편하게 노닐 수 있는 터전, 영화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의 얼굴과 더 깊이 정들 세월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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