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탐구의 여정
2013-05-01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페데리코 펠리니 특별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5월7일부터 19일까지
<길>
<아마코드>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 중 하나가 ‘페데리코 펠리니’다. 그저 흑백의 고전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영화적 프레임의 현대적 움직임에 감탄하게 되고, 네오리얼리즘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영화적 환상성의 도입에 깜짝 놀라게 된다. 물론 비난 역시 가끔 들려온다. 일례로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연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른바 ‘자습감독’으로 펠리니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영화에 투영했으며, 또한 문학적 교양이 있는 관객이 ‘더’ 공감하는 시나리오나 사상에 관심을 보이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러한 평가는 다시금 현대의 관객 몫이 됐다. 우리는 고전 레퍼토리를 통해 현대영화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펠리니 사후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이번 특별전은 따라서, ‘양식있는 고전주의’와 ‘몰상식한 바로크’ 사이에 자리한 감독으로서 페데리코 펠리니를 뒤돌아볼,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초기작부터 1990년의 <달의 목소리>까지, 이번 특별전에 상영되는 영화는 총 13편이다. 우선 데뷔작 <다양한 불빛>(1950)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펠리니적 세계’의 탄생을 알린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 앙드레 바쟁은 공동작가 라투아다가 차지하는 비중의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다며, 평가에 난색을 표한 바 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뛰어나다. ‘20대 말과 30대 초에 이르러서도 철없는 남자’를 가리키는 제목의 <비텔로니>(1953)는 자전적 경향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의 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플롯은 흥미롭고, 동시에 비열하기 때문에 관객의 생각을 이끌어낸다. 어쩌면 채플린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따스함과 우울의 정서는 <길>(1954)이 대표적으로 품는다. 백치와 같은 순진함을 지닌 젤소미나를 통해 펠리니는 ‘더 위대하고 초월적인 것’을 갈망한 자신의 불확정적 내면을 표출해낸다. 한편 줄리에타 마시나에게 칸영화제 최우수배우상을 안긴 <카비리아의 밤>(1957)은 기괴하면서 동시에 멜로드라마적 측면을 지닌 걸작이다. 인상적 오프닝의 사건은 결국 자포자기의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그렇지만 구원을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장면까지 흘러간다.

1960년작 <달콤한 인생>을 기점으로 펠리니의 색채는 변화했다. 우선 제작 규모가 기존보다 커졌고, 감독 특유의 ‘상상적 공간’의 비중 역시 늘었다. 리미니의 아드리아 해변이 주는 쓸쓸함의 기색도 이 시기에 더욱 가중되는데, <길>의 엔딩에서 보다 더,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바다 신은 황망하게 느껴진다. 스토리의 결말이 어떻든 간에 이를 종결짓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독은 알리려 한 것 같다. 이렇듯 ‘명백함’이 지워진 이야기 구조는 현대영화로의 진입로를 제시해준다. 모던한 역사극 <사티리콘>(1969)의 종결부에 비친 바다의 역학적 질감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 명작 <8과 1/2>(1963)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극적 요소가 제거된, 그리하여 의사소통이 불능한 현대영화의 한축을 제시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는 주관적 에피소드들은 끝내 펠리니의 영화를 통해 ‘자유스런 에세이’란 호칭을 얻는다. 이 밖에 서커스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독특한 형식으로 푼 <광대들>(1970)이나, 위대한 실현가로서 그리고 훌륭한 예견자로서의 펠리니를 생각게 만드는 <로마>(1972) 역시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는 작품이다.

‘나는 기억한다’란 뜻의 <아마코드>(1973) 또한 이 시기의 영화인데, 고향 리미니에 돌아간 펠리니는 현실과 꿈, 실제와 기억을 뒤섞으며 모방적 표현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화로의 길을 모색해간다. 명확한 플롯이 아닌, 정신적이고도 시청각적인 이미지, 이렇듯 펠리니는 스스로 이룩한 탐구적 영화의 명맥을 끝까지 고수해 보인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