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신임 교황에게 요구되는 미덕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2013-05-01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의식을 ‘콘클라베’라고 한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108명의 추기경들이 비공개 투표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세밀히 담았다. 물망에 올랐던 후보들이 경합한 일차 투표가 무산되고 재투표를 통해 어렵게 신임 교황(미셸 피콜리)이 선출되는데 예상 밖의 인물이다.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은 전세계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은 경축하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베드로 광장과 마주한 발코니에 신임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야 할 순간, 그는 발작을 일으키고 도망쳐버린다. 평생을 신의 섭리에 맞춰 온화하게 살아왔던 그는 엄청난 책임감을 짊어진 지도자의 자리가 무섭고 두려웠고, 자신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거짓 해명으로 일단 시간을 번 뒤 특단의 조치로 정신분석의사(난니 모레티)를 불러들인다. 교황의 안정을 위해 강구한 방법이지만 억압적인 환경에서 진행된 정신분석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 더욱 초조해진 교황청은 외부 정식분석의사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신임 교황은 망설이다 자신이 배우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이 거짓말이 영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배우학교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그 대신 여동생이 배우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혼자 세상 구경에 나선 신임 교황은 친숙한 체호프의 연극과 맞닥뜨리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성’(聖)과 ‘속’(俗)의 갈등과 화합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이 영화처럼 성과 속이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난니 모레티 감독 특유의 경쾌함과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신임 교황에게 요구되는, 전통을 유지하되 변화와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미덕은 영화에 대한 감독의 주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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