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이 돌아왔다. <어벤져스>의 화려한 성공만큼이나 <아이언맨2>의 혹평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모습을 드러낸 <아이언맨3>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묵직하고 탄탄해진 이야기, 특유의 유머감각, 그야말로 마블 유니버스 맏형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특히 롤러코스터 같은 클라이맥스의 액션 시퀀스는 블록버스터의 미덕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섣부를지 몰라도 감히 시리즈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진짜 아이언맨이 등장했다.
<어벤져스>의 멤버들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 제멋대로에 거만하기까지 한 토니 스타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캡틴 아메리카는 그를 보자마자 공격적으로 묻는다. “슈트를 빼고 나면 당신에게 남는 게 뭐가 있지?” 이에 대한 토니 스타크의 거침없는 대답.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박애주의자.” 그렇다. (문답에서 묻어나는 유머감각까지 포함하여) 이 문답만큼 아이언맨의 본질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장면도 없다. 슈퍼히어로 역사상 이만큼 잘나고 뻔뻔하고 솔직한 영웅이 또 있었던가. 정체를 감추어야 하는 슈퍼히어로가 천연덕스럽게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뻔뻔하고도 매력적인 영웅에 매료되었다.
2편의 아쉬움 그리고 <어벤져스>란 떡밥
그러나 그토록 참신하게 등장했던 아이언맨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기존의 슈퍼히어로들의 차별화된 출발, 달리 말하자면 이질적인 존재감 때문일 수도 있다. 우선 아이언맨은 고뇌하지 않는다. 대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중심에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자리한다.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제약 자체가 캐릭터의 기반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언맨은 그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출발했다. 이제 무엇을 가지고 캐릭터의 내적갈등을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둘째로 아이언맨은 마땅한 적수가 없다. 그만큼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슈퍼히어로가 넘쳐나는 홍수 속에서의 밸런스를 따지면 그리 강력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여기서 파워의 강약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에 일조하는 대척점으로서의 존재가 없다는 말이다. “넌 날 완성시켜줘”라는 <다크 나이트> 속 조커의 대사처럼 히어로와 빌런(악당)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적이라기보다는 빛과 그림자와 같이 서로를 보완하여 하나의 질문으로 완성되는 존재다. 다시 말해 악당이 있어야 슈퍼히어로도 있다. 하지만 이미 쿨하게 커밍아웃까지 해버린 마당에 대척점에 있는 적수를 찾기란 마땅치 않다.
시리즈 바깥의 문제도 있었다. 소니로 판권이 넘어가버린 스파이더맨을 대신하여 마블 유니버스의 맏형 노릇을 해야 했던 까닭에 온전히 <아이언맨> 시리즈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어벤져스>의 예고편이 아니냐는 팬들의 조롱을 들어야 했던 <아이언맨2>는 이러한 한계들의 합작품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지에 대한 설명 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날이 갈수록 성능을 강화해나가는 아이언맨의 위용에 비해 악당은 참으로 초라했다. 위대한 적이 없는 만큼 화려한 전투장면과 물량공세를 펼칠 만한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은, 아이언맨 기술개발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 된 것이다. 만약 <어벤져스>가 없었다면 그대로 사라진다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자면 <아이언맨2>는 <어벤져스>의 한방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단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벤져스>야말로 진정한 <아이언맨2>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마블 유니버스가 펼쳐놓은 세계관 안에서 벌어진 <어벤져스>의 한바탕 난장판의 핵심 스토리 라인은 <토르>의 이야기를 이어받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톤을 잡아나간 건 어디까지나 <아이언맨> 시리즈 특유의 유쾌함과 가벼움이었다. 아이언맨은 그렇게 한없이 가볍고 화려한 마블 유니버스의 중심에 서 있다. 때문에 돌아올 <아이언맨3>를 두고 기대만큼 불안도 컸던 게 사실이다. 이번 작품 역시 다시 한번 <어벤져스2>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까. <어벤져스>의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시작하는 3편이 2편의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 세계관은 다 섞여버리고 심지어 ‘신’인 토르마저 나온 마당에 천재 억만장자가 맡을 역할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고민 따윈 없을 것만 같은 아이언맨에게 더이상 무슨 드라마가 남아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었다. 아니 많았다. 감히 단언하건대 <아이언맨3>는 <아이언맨>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어벤져스>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후반부의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통한 액션 시퀀스는 물론이거니와 드라마적으로도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탄탄하다. 결정적으로 마블 유니버스의 맏형답게 무게감이 있다. 어쩌면 그간 재미는 있지만 너무 가볍다는 핀잔에 시달려온 마블의 승부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결은 다름 아닌 성장이다. 영원한 키덜트일 줄 알았던 토니 스타크가 이번 작품에서 드디어 어른이 된다(물론 사람이 쉬이 변하진 않는 만큼 유쾌하고 삐딱한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위해 <아이언맨3>가 선택한 전략은 ‘처음으로 돌아가기’다. 인간 토니 스타크가 처음으로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고뇌’가 가져다준 드라마와 액션의 깊이
원래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가장 어려운 걸음은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히어로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두 번째에는 단순한 소개 이상의 깊이에 접근해야만 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배트맨> 시리즈를 보라.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완벽하게 되살아난 <다크 나이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배트맨 비긴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누구인가.” 이것이 슈퍼히어로의 핵심이자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 셈이다. 슈퍼히어로물의 서사란 가면 뒤의 자아와 가면 속 자아간의 대결을 뼈대로 한다. 두개의 분열된 자아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아내는 것, 이를테면 외계인인 슈퍼맨이 클라크 켄트로 살면서 지구인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것, 고담시의 재벌 브루스 웨인이 도시의 어둠을 수호하는 다크 나이트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 우리의 유쾌한 친구 피터 파커가 사진기사인 한편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 그러하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회에서 자리 찾기인 셈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빌런들은 히어로의 사명과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한 필요악이다. 요약하자면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하여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끝나는 것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주요 갈등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아이언맨은 그같은 고뇌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를 움직이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흥미와 즐거움이다. 뭐든지 뚝딱 만들어내는 천재에다가 억만장자. 무기산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특별히 이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는 점이 히어로로서 토니 스타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그는 흥미와 재능, 개인적인 열정으로 뭉친 사람이다. 같은 부자라도 고담시에 대한 책임감을 짊어지려는 브루스 웨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적으로 토니 스타크의 집이 밝은 해안가의 절벽에 위치한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완벽한 개인주의자이자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 물론 그의 ‘완벽한’ 자유는 간섭받지 않을 만큼의 재능과 재력을 전제한다.
토니 스타크의 윤리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이라기보다 자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에 가깝다. 단순하게는 사람들이 상처받아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상식 수준. 그러나 이 단순하고 순수한 상식의 관철이야말로 사람들이 아이언맨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때론 단순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정의가 필요할 때도 있다. 적어도 그는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수단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특별히 얽매이는 것도 없다. 그러니 약점도 없다. 그야말로 고뇌하지 않는 영웅, 취미로 슈퍼히어로를 하는 탕아, 재능으로 똘똘 뭉친 어른아이인 셈이다. <아이언맨> 시리즈는 이 자유분방한 캐릭터에게 억지로 짐을 하나씩 지우며 그를 히어로로 만들어왔다. <아이먼맨2>에서 비서 페퍼 포츠에게 정착하며 플레이보이의 자격을 잃은 것도 그중 하나. 박애주의자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3>에서 보란 듯이 “너만은 지키겠다”는 재미없는(?) 남자가 되어버린 순간 역설적으로 그는 히어로의 조건을 갖추어간다. 그리고 <아이언맨3>에 이르러서야 그는 드디어 근본적인 질문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진짜 아이언맨은 누구인가. 토니 스타크인가. 아니면 그의 슈트들인가.
시작은 이렇다. <어벤져스>에서 웜홀을 통해 외계문명을 접하고 온 토니 스타크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존재들과의 조우. 재능과 재력으로 마음만 먹으면 뭐든 컨트롤이 가능했던(적어도 그렇게 믿어왔던) 그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긴 시리즈 내내 그가 마주한 적들이라고 해봐야 다들 자신의 기술을 훔치거나 잠시 빌린 이들뿐 아닌가. 실질적으로 <아이언맨>의 세계에서 아이언맨의 적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벤져스>의 세계관으로 넘어오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존재들과 마주한 그는 처음으로 불안을 느낀다. 난생처음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급기야 발작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지점이야말로 진짜 아이언맨다운 아이러니다. 불면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냉소적인 천재 억만장자라는 설정을 통해 한없이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반응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아이언맨>의 끝, 새로운 출발
결국 토니 스타크는 일종의 도피처로 슈트 개발에 매달리며 점점 피폐해져 간다. 완벽한 줄 알았던 토니 스타크 세계에 생긴 균열. 하지만 균열과 그로 인한 고통은 히어로의 (혹은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그간의 시리즈에서는 그런 한계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토니 스타크도 <아이언맨3>를 통해 여느 인간과 다름없는 사람임을 증명했고 그렇기에 비로소 슈퍼히어로가 될 자격을 갖춘다.
이제 정체성을 흔들 만한 시련과 마주한 슈퍼히어로는 선택을 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부모와 연인을 잃고 방황한 끝에 고담시라는 공공의 선을 위해 한몸을 바쳤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을 만한 힘을 지닌 슈퍼맨은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의 삶을 선택하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의외의 힘을 얻고 신나하던 10대 청춘 스파이더맨은 삼촌의 죽음을 대가로 큰 힘에 따른 큰 책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슈퍼히어로라는 가면 뒤로 얼굴을 숨긴 채 자신들이 마주한 한계, 그로 인한 불안과 싸워나간다. 아이언맨은 3편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와 같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미지의 존재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슈트 개발에 집착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가면 밖으로 적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냈던 토니 스타크는 점차 늘어나는 가면, 이 경우엔 무려 마크42까지 개발된 아이언 슈트들 뒤로 매몰되어간다.
이제 판은 짜졌고 도화선에 불을 붙일 일만 남았다. ‘토니 스타크는 누구이고, 아이언맨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려면 그에 합당한 매력적인 악역이 필요한 법, <아이언맨3>가 선택한 빌런은 원작 코믹스 속 최대의 적수 ‘만다린’이다. 10개의 반지에 담긴 마법을 부리며 아이언맨을 괴롭히던 코믹스와 달리 ‘텐링스’라는 테러집단을 이끄는 수장으로 등장한 만다린은 “사람들은 나를 알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라는 대사와 함께 아이언맨의 정체성에 대한 각을 세운다. 이후 드러나는 만다린의 실체와 또 다른 악역 킬리언의 존재감은 전작의 악역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이언맨3>의 악당들은 미디어에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영웅 아이언맨의 그림자로서 흥미로운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결 구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아이언맨3>는 ‘아이언맨’의 상식적인 첫 출발인 동시에 대단원이다. 한편으론 매력적인 캐릭터의 완성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아이언맨 1기의 마감처럼 보인다.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 비유하자면 마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상이랄까. <다크 나이트>만큼 깊이있고 묵직하게 질문을 던지진 않지만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그 정도의 무거움은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실로 절묘한 균형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아니 마블의 강점은 어디까지나 ‘가볍고 유쾌하게’에 있으며 <아이언맨3>는 그 본분을 잃지 않는 선에서 확실한 중심을 잡고 있다. 때문에 <아이언맨3>를 감히 시리즈의 정점(혹은 시즌1의 마감)이라 부르고 싶다. 어른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토니 스타크를 보는 건 어딘지 아쉽지만 한편으론 <어벤져스2>가 기다려지는 새로운 출발이다.
<아이언맨>을 위한 변명 하나
아이언맨의 악당들은 약하다?
1편의 악당 오베디아 스탠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회사 동료, 2편의 악당 저스틴 해머는 무기사업상의 라이벌이었으며, 위플래시 역시 토니 스타크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과학자였다. 말하자면 아이언맨의 적들은 모두 토니 스타크로 인해 탄생한 경쟁자들이다. 절대악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로 얽혀 있는 만큼 대중에게 위협을 가하는 악당으로서의 명분도 약할뿐더러 기술적인 수준에서도 토니 스타크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등 위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심지어 문제의 빌미는 언제나 토니 스타크쪽에서 제공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그들의 존재감 문제라기보다는 히어로로서 아이언맨의 고뇌가 표면화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는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의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냉전 시대를 바탕으로 하여 전통적인 히어로와 악당의 관계를 그리는 DC에 비해 마블은 후발주자였던 만큼 젊고 신선한 감각의 히어로들을 내세웠다. 때문에 마블의 히어로는 스파이더맨처럼 돌연변이로 인한 캐릭터들이 다수를 이루고 그에 따라 빌런도 절대악이라기보다는 주인공과 닮은꼴 또는 엇나간 동반자의 이미지가 강하다(<스파이더맨2>의 닥터 옥토퍼스가 대표적). 때문에 히어로를 완성시켜주는 거울이자 대척점인 DC의 막강한 빌런들에 비해 마블의 악당들은 좀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언맨>을 위한 변명 둘
아이언맨은 <어벤져스>의 예고편이다?
<아이언맨2>의 경우는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마블의 연계된 세계관을 그리고자 본편의 맥락과는 관계없는 설정들을 자주 등장시켰고 이로 인해 극의 흐름이 일정 부분 방해받은 것이 사실이다. <어벤져스> 결성기관인 쉴드 요원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아이언맨3>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로 ‘아이언맨’스러운 능청스러움을 발휘했다. <아이언맨3>와 <어벤져스>를 이어갈 연결점으로 작품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활용한 것. 덕분에 <아이언맨3>의 본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언맨’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그간 <아이언맨> 시리즈가 안팎으로 쌓아온 모든 요소를 다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끝난 뒤 굳이 “아이언맨은 다시 돌아온다”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심정이 왠지 이해가 되는, 그야말로 아이언맨 1기의 완성이다. 그런 만큼 엔딩 스크롤이 올라온 뒤 공개되는 스페셜 영상은 반드시 관람할 것을 권한다. 짧지만 강렬하고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