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하고, 무분별한 개발과 그것으로 인한 기후 변화를 경고하며, 전세계 환경문제에 대한 이슈를 다뤄온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10회째를 맞았다. 16개국 21편의 경쟁작을 비롯한 기후 변화와 미래, 그린 파노라마,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 지구의 아이들,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등 주제별로 묶은 다양한 섹션을 통해 총 46개국 146편의 환경영화가 상영된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들이 지난 80년 동안 찍은 북극지역의 풍광과 변화를 담은 사진전과 캐나다의 환경영화도 소개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청소년들에게 환경영화 관람과 체험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열린다. <씨네21>은 올해 상영작 중 꼭 챙겨봐야 할 9편을 따로 소개한다. 제1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5월9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16일까지 총 8일간 CGV용산에서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영화제 홈페이지(http://www.gffis.org/)를 참조할 것).
<프라미스드 랜드> Promised Land
구스 반 산트 / 미국 / 2013년 / 106분 / 개막작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프라미스드 랜드>는 구스 반 산트의 열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맷 데이먼이 각본에 참여하며 동시에 주연도 맡은 이 영화는 <굿 윌 헌팅>(1997)과 <제리>(2002)에서 보여줬던 연출과 배우의 앙상블을 기대하게 만든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구스 반 산트의 작품 중에선 범작에 속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며, 교훈을 넘어서는 선험적 매력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힘을 지녔다. 주인공 스티브는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농업도시 매킨리를 찾는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그의 목적은 ‘가스개발회사의 투자 유치’에 있다. 하지만 만만하게 봤던 임무수행에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하는데,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인 프랭크가 개발을 반대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은둔 고수의 등장, 진실한 감정의 순간에 대한 관객의 기억을 건드린단 점에서 영화는 <굿 윌 헌팅>에 비견된다. 하지만 거대 조직의 ‘조작’에 대한 테마에 경제적 스릴러를 가미했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드라마다.
<레드 하우스> The Red House
알릭스 던컨 / 뉴질랜드 / 2012년 / 75분 / 국제환경영화경선
20년 전 처음 만난 뉴질랜드인 ‘리’와 중국인 ‘지아’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뉴질랜드의 외딴섬에 있는 ‘레드 하우스’에 함께 살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영화는 자연이 선사한 먹거리에서 시작해 숲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둘러싸는지,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느리고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나이 든 부모를 공양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 지아와 홀로 남겨진 남편 리를 비추며 공간과 감정의 거리로 주제를 확대하기도 한다. 영화 <레드 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수려한 배경을 조화롭게 포착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오프닝에서 시작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이국적이란 인상을 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는 실제 감독의 아버지라 하는데, 계모 지아를 비롯해 카메라 뒤 그들의 딸,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영화에 배어들어 따사롭고 안정적인 감정을 전한다. 현재 댄스필름 위주로 작업하는 안무가 알릭스 던컨의 성공적인 장편 데뷔작이다.
<GMO OMG> GMO OMG
제레미 세이퍼트 / 미국 / 2013년 / 92분 / 기후변화와 미래 plus-주사위놀이: 유기농과 GMO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뜻하는 GMO와 ‘오 마이 갓’의 OMG, 두 단어가 합쳐져 <GMO OMG>가 됐다. 내용은 제목이 알리는 대로다. 영화는 미국식 먹거리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언급하기 시작해 현재 전세계 식탁에 숨겨진 음흉한 비밀을 차근차근 밝힌다. 수확량의 증대와 해충 방재를 위해 씨앗에 대대적인 유전자 조작이 가해졌다. 이렇게 키운 콩과 옥수수 등의 식량, 그리고 이를 먹고 자란 소와 돼지 등의 축산물이 우리의 식탁으로 직행한다. 제레미 세이퍼트 감독은 대형마트의 가공식품 중 80% 이상, 근본적으론 거의 모든 것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로 만들어졌다고 고발한다. 실질적 영향력이 밝혀질 만큼의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아프리카 등지의 주요 식재료 산지마저 이미 경제적인 이유로 질이 아니라 양에 더 관심을 가지는 상태가 됐다. 마치 앨리스의 탐험 같은 이 이상한 모험에 출구는 없어 보인다. 우리의 곁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GMO의 끔찍한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톰의 특별한 식탁> Rauwer
아넬로크 솔라르트 / 네덜란드 / 2012년 / 54분 / 기후변화와 미래 plus-주사위놀이: 유기농과 GMO
아넬로크 솔라르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두편의 주인공은 같다. 2008년 만든 단편 <톰의 특별한 입맛>은 5년간 과일과 야채, 견과류 등 ‘로푸드’로만 살아온 톰과 그의 엄마 프란시스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논쟁과 함께 유명해졌고, 당시 주인공 톰 모자는 TV 토크쇼에 초대받기도 했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그때의 쇼프로와 단편영화 화면, 그리고 현재의 톰의 모습을 담은 같은 소재의 다른 장편 <톰의 특별한 식탁>이다. 다년간 생식을 먹은 결과, 15살이 된 톰은 지금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진단 결과 톰은 칼슘 결핍 때문에 키도 또래보다 12~15cm 정도 작다고 한다. 게다가 엄마인 프란시스는 최근 아동 방치 및 학대 혐의로 법원에 기소된 상태다. 감독은 이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 그리고 톰의 결정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진행시킨다. 개인의 식습관에 당국이 개입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식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영화는 진지하게 되묻는다.
<잘 먹고 잘 사는 법> Sweet Temptation
정한진 / 한국 / 2013년 / 25분 /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
정한진 감독의 단편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한국을 배경으로 오늘날 생식문화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화이다. 엄마를 따라 어려서부터 생식을 해온 초등학생 정호는 생식 덕에 학교에서 조금 튀는 아이로 취급받는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생기고, 체육시간에 툭하고 쓰러져 양호실로 직행하는 일도 잦다. 그러던 중 로푸드 식단에 대한 아이의 신념에 위기가 닥쳐온다. 같은 반 친구 해미가 정호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것이다. 첫사랑처럼 갑자기 찾아온 초콜릿의 유혹, 아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씹을 때는 딱딱하지만 막상 입으로 들어가면 부드러워지는 악마와도 같은 음식 초콜릿, 잠깐 동안은 쓰더라도 오래도록 달고 맛있는 마법 같은 초콜릿으로 인해 정호는 마음이 괴롭다. 요즘 일각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로푸드를 소재로 만든 따스한 소품 같은 단편영화로, 같은 주제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더 재밌다.
<모래> Sandgrains
조디 몬테비치, 가브리엘 만리케 / 영국 / 2013년 / 70분 / 국제환경영화경선
거대 기업의 자원 침탈과 환경파괴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어린 시절 스웨덴으로 이주한 호세 포르테스는 프로 축구선수가 되어 성공한다. 서아프리카 카보베르데로 금의환향한 호세는 추억 속 고향의 모습과 딴판인 현실에 놀란다. 그가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놀던 고향 바다는 물고기가 넘쳐났던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바다는 더이상 물고기가 살지 않는 황량하고 척박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유럽의 거대한 배들이 이곳의 물고기와 심지어 모래까지 싹쓸이해간 결과였다. 호세는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다니고 영화는 이 과정을 담는다. 어획과 채취는 분명 합법적으로 이루어졌고 보상금도 지불되었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은 지역민을 위해 보상금을 쓰지 않았고 거대 기업은 이윤을 얻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구조적으로 자행된 착취는 자연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답을 얻는 길은 암울해 보인다.
<동물원에 대한 단상> A Brief History of Zoo
왕웨이유 / 중국 / 2013년 / 7분30초 / 국제환경영화경선
동물원의 역사를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정리한 단편애니메이션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야생동물의 사육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거나 검투사와 싸우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 희귀동물을 위한 동물원을 세웠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동물원의 기원은 여기서 비롯된다. 프랑스 혁명 뒤 궁전에 있던 동물들은 파리 식물원으로 옮겨졌고 동물원이 정원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럽에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발흥하면서 동물원은 도시 문명의 상징이 됐고 차츰차츰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동물원이 세계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동물의 감금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울타리를 교묘하게 감추는 방식도 고안된다. 이 작품은 동물원이라는 키워드 안에 세계사를 압축하고 있다. 동물원의 역사는 곧 침략의 역사이자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현대적인 도시와 건축 양식 등에 대해서도 사유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짧지만 내용의 밀도가 높다.
<시르밀리크> Sirmilik
자카리아스 쿠눅 / 캐나다 / 2011년 / 10분26초 / 캐나다환경영화전
시르밀리크란 이누이트어로 ‘빙하의 장소’라는 뜻이다. 캐나다 북쪽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툰드라 지대로 한해의 대부분이 빙하와 눈으로 뒤덮여 있다가 여름 한철 눈이 녹고 초록식물이 보인다. 이 작품은 이곳의 자연과 과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원주민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자연의 풍광이 일품이다. 온통 흰색뿐인 광활한 대지와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인간의 모습을 멀리서 잡은 화면은 자연의 위엄을 보여준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원주민은 어려서 아버지에게 사냥과 이글루 짓는 법을 배웠고 수십년간 그 방식대로 살아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의 변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늘을 관찰하고 그날의 계획을 세운다. 사냥에 적합한 날인지 하늘이 일러주었고 그 가르침을 따라왔는데 요즘은 간혹 예측이 어긋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 고백은 보는 이를 안타깝고 부끄럽게 만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냥장면은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알려진 <북극의 나누크>를 떠올리게 한다.
<히마와리와 나의 7일> 7Days of Himawari & Her Puppies
히라마쓰 에미코 / 일본 / 2013년 / 118분 /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일본은 인간의 친구인 개에 관한 영화를 잘, 많이 만드는 나라다. 극영화인 이 작품은 히마와리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중심으로 그와 조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노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던 히마와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요양원으로 떠나자 떠돌이 개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히마와리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히마와리와 새끼들은 구조되어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옮겨진다. 국내에서도 최근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유기견 문제를 쉽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이 영화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개를 사랑하는 주인공 소녀는 유기견 보호소의 현실을 알게 되자 큰 충격에 빠진다. 불과 일주일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 소녀는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 소녀의 성장에 대한 짧은 보고서이기도 한 영화는 가족이 함께 감상하기 좋은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유기견 입양기>나 <마사오군이 간다> 역시 개가 중요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