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블랙 호크 다운>의 조시 하트넷
2002-02-06
글 : 위정훈
아름다운 청년, 다시 포화 속으로!

1978년생. 이제 스물넷이 된 그의 첫 느낌은 ‘식물성’이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모질거나 모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덕분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진주만>에서 에블린이 자신보다 친구 레이프를 더 사랑할까 두려워하는 파일럿 대니의 쓸쓸한 사랑의 여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진주만> <블랙 호크 다운>. 여름과 겨울을 잇따라 폭격한 두편의 전쟁영화에서 조시 하트넷은 포화 속의 이상주의자이자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가왔다. 물론 일찍이 10대 공포영화 <패컬티>에서 마약을 제조해 팔던 소년으로, <할로윈 H20>에서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들로 스쳐지나가기는 했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조시 하트넷은 이상주의자 멧 에버스만 하사로 등장한다.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긴박한 전장에서 에버스만이 부상당한 동료의 동맥에서 솟구치는 피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위생병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에버스만은 소리를 지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어두운 눈빛과 저음의 짧은 독백으로, 전쟁이 인간을 그리고 삶을 어떻게 고갈시키는지 증언한다. 감정을 탈색해버린 조시 하트넷의 눈빛과 목소리는 저릿하게 관객의 가슴을 관통한다.

방랑벽과 반항기질. 조시 하트넷은 배우로서의 성공비결에 대해 “4분의 1의 방랑벽과 4분의 3의 순수한 반항기질”이라고 말한다. 어린 조시는 14살 때부터 소설가 케로액의 <길 위에서> 같은 소설이나 달마의 경전 따위를 읽으며 인간의 내면을 방랑했고, 조용하고 온유한 표정에서 유추하긴 힘들지만, ‘어버이의 모든 것’을 무시했다. 가톨릭계 학교 출신이었던 부모는 그에게 “선택은 자유지만 자신들이 나온 학교를 가지 않으면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했고, 그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결국 잠시 다니던 미네소타주의 가톨릭계 학교를 중단하고 사우스 하이 스쿨을 다니던 그는 풋볼을 하다 인대가 찢어지는 바람에 무대로 눈길을 돌린다.

5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왔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무명배우들이 TV광고에 얼굴을 비추려고 몸부림치는지 알지 못했다. 고향인 미네소타주에서 연극 주연도 해봤고 TV광고도 찍었던 그는 행운이 계속되리라 생각했고, 뜻밖에 행운의 여신은 그 순진한 믿음에 미소를 보냈다. 그는 곧 TV시리즈 <크랙커>(Cracker)에 반항적인 10대 소년에 캐스팅되었다. 프로그램은 단명했지만 그는 단명하지 않았다. 영화계에서 그를 주목했고, 이런저런 코미디와 로맨스 드라마 등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의 사이코 드라마 <버진 수어사이드>(The Virgin Suicides, 1999). 신비스럽고 쿨한 매력을 발산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그의 연기에 영화계는 눈길을 멈추었다.

<블랙 호크 다운>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마스터(master)와 함께 일하게 됐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 짜릿했다는 조시 하트넷의 배우인생 제1장은 화려한 스타덤으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마이클 레만 감독의 로맨틱코미디인 (40 Days and 40 Nights)으로 제2장을 열고 있다. 이 시대의 말론 브랜도나 로버트 드 니로를 꿈꿀 수 있겠느냐고 겸손을 떠는 그는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떤 빛깔과 음색의 연기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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