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집의 달인
2013-05-14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오계옥
<고령화가족> 신점희 미술감독

Filmography

<고령화가족>(2013), <오늘>(2011), <시>(2010),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 <밀양>(2007), <강적>(2006), <댄서의 순정>(2005), <역도산>(2004), <오아시스>(2002), <집으로…>(2002, 미술감독 데뷔작), <킬리만자로> 미술팀(2000), <박하사탕> 미술팀(1999)

“실제 취향은 리얼리즘쪽이 아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조도로프스키 영화고, 그다음은 타르코프스키? (웃음)” 낡고 평범한 연립주택에 <고령화가족>을 입주시킨 신점희 미술감독의 말에 잠깐 귀를 의심했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있긴 했으나,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실생활 재현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로 데뷔해 이창동 감독과 4편 이상 작업해온 그녀는 특히 ‘집’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편. <집으로…>에서 “동화적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산을 깎고 길을 닦아 공예작품처럼” 집을 지어도 봤고, <오아시스> <밀양> <시>를 통해서는 리얼리스트 감독을 따라 “더러워도 묘사하고 후져도 묘사하며 속세로부터 고개 돌리지 않는” 집짓기 기술도 연마해왔다.

송해성 감독이 <역도산> 뒤 다시 신점희 미술감독을 찾은 것도 그녀에게 엄마의 ‘집’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읽고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임을 파악한 그녀는 ‘엄마’의 집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야 할지 망설였다. “집은 그 집에 누가 사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시> 때도 그랬지만, 결국 내가 그 사람이 돼서 집을 꾸미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윤여정 선생님이 워낙 세련되고 예리한 분이다 보니 묵묵히 고기만 구워먹이는 엄마가 잘 그려지지 않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엄마 이름 좀 정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엄마 이름은 김남심 여사야~’라고 하는 거다. ‘완전 딱이에요! 어디서 나셨어요?’라고 물으니 ‘어, 우리 엄마 이름이야’라고 하시더라. (웃음)” 그 이름으로부터 엄마의 따뜻한 기운을 전달받은 그녀는, “각자 개성이 강한 배우들이 방바닥에 엉덩이를 지지며 한데 녹을 수 있도록” 세트 아래 온돌까지 까는 모성애(?)를 선보였다.

출가한 지 한참 지난 삼남매 사이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모든 출발점은 인물”에 있었다. “자식들이 시집, 장가 가면서 버린 물건들만 남아 있는 집이니까 실제 가족 사이라도 금방 화학작용이 일어나진 않을 거다. 그래서 세 배우의 어릴 때 사진들을 전부 받은 다음, 인터넷에서 찾은 낯선 형제, 남매들의 사진에다 합성해봤다. 그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으니까 배우들도 세트에 처음 들어와서 ‘우리 가족사진 같네~’라며 좋아하더라.” 적어도 <고령화가족>에서 그녀가 견지했던 영화미술의 사실성은 캐릭터들로부터 추출해낸 수많은 디테일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인물과 공간의 자연스런 합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토록 사실적인 공간 묘사에 공력을 다하는 신점희 미술감독을 후배들이 괜히 “원천기술 보유자”로 부르는 게 아니다. 거대 규모 공사도 전문인 그녀다. <밀양>에서는 공터에 ‘전도연 거리’를 신축하고 <시>에서는 “시체가 떠내려오는 강도 반듯하게 펴봤다”는 그녀에게 중랑구 묵동의 살풍경한 연립주택을 새로 단장하는 게 대수였으랴. “리얼리즘 영화미술 어쩌고 하면서 인터뷰하자고 하시면 속으로 ‘아이고, 팔자야~’ 한다. 내가 만든 집이 세트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헛수고를 많이 했다고 해야 하나. (웃음)” 그녀의 그런 ‘헛’수고가 있어 리얼리스트 감독들이 설계한 ‘허구’의 세계가 현실에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미정인 차기작에서도 그녀가 지을 영화의 집이 배우들이 잠시 머물다간 모델하우스처럼 느껴지지 않을 이유다.

그녀만의 사진집

신점희 미술감독에게 최고의 자료는 그녀만의 ‘사진집’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흑백사진을 배워서 오래된 사진도 많다. 자료집으로 꽤 유용하다. 가령 이건 한모(윤제문) 뒤에 슬쩍 낙서를 넣고 싶어서 내가 찍어놨던 사진(왼쪽)을 바탕으로 미술팀 후배가 수집한 벽화(오른쪽)다. 나 때문에 우리 후배들이 이렇게 하찮아 보이는 디테일을 위해 고달프게 일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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