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위스키를 훔치다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2013-05-15
글 : 김보연 (객원기자)

로비(폴 브래니건)는 잇따른 술과 마약, 폭행 사건으로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다.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고 나서야 제대로 살 마음을 먹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 와중에 로비는 우연히 자신이 뛰어난 후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위스키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통에 100만파운드가 넘는 위스키를 훔칠 대담한 계획을 세우지만 이 계획에 동참한 친구들은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로비를 곤경에 빠트린다.

날카로운 비판 정신으로 어두운 현실과 맞서 물러서지 않던 켄 로치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켄 로치식 강탈극인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를 보고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고가의 위스키를 두고 벌이는 소동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이들이 벌이는 유쾌한 소동에 집중한다. 켄 로치의 전작들에서 이미 변화가 보이긴 했지만 이번만큼 ‘가벼운’ 영화가 있었나 싶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켄 로치는 그러나 뒤로 갈수록 슬그머니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위스키를 훔치려는 어딘가 모자란 인물들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보면서 켄 로치의 날카로움이 무뎌졌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 때쯤 하층민을 향한 강한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가의 위스키를 훔치는 일은 명백히 법질서를 어기는 일이지만 감독은 이들의 행동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대신 변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부자들이 비싼 위스키를 마시든 말든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어중간하게 두 계급간의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화끈하게 한쪽 속을 들어주는 켄 로치의 고집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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