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영(김규리)은 자신의 이름 한번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지쳐간다. 무료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희영은 안락한 삶을 위해 떠나보내야 했던 첫사랑을 떠올리며 무작정 부산으로 떠난다. 한편 돈 때문에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한 택시기사 준호(유건)는 꿈도 희망도 없이 팍팍한 일상을 그저 버텨낸다. 우연히 부산에 내려온 희영을 태우게 된 준호는 어딘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가 신경 쓰이고 급기야 첫사랑을 찾기 위한 그녀의 여정에 동참한다. 뜻하지 않는 동행 속에서 상대방의 상처를 감지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 위안이 되어준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짧은 여행의 끝은 다가온다.
낯선 곳에서 만난 두 사람이 상대에게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 또 다른 의미를 배워간다. <어디로 갈까요?>는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돈을 위해 사랑을 버린 희영과 돈 때문에 꿈을 버린 준호는 절로 끌릴 수밖에 없는 닮은꼴이다. 희영에겐 부산이라는 낯선 공간이, 준호에겐 희영이라는 낯선 존재가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일탈로 출발하지만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고 영화는 과장된 수사 없이 담담하게 두 사람의 여정을 따라간다. 결국 ‘어디로 갈까요’라는 질문은 장소에서 출발하여 인생에 대한 태도로 귀결된다. 그 과정과 결말에 다소의 과장과 무리수가 있지만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두 주연배우의 연기도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안정적으로 녹아든다. 문제는 필요한 요소를 다 짚어주면서도 정작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행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이 여행지의 풍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부산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