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넉넉한 여유와 연륜 <멋진 녀석들>
2013-05-15
글 : 이기준

쇼는 끝났다. 좋은 날들은 이미 지나갔고 왕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인 닥(크리스토퍼 워컨)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술병과 권총 대신 혈압약과 붓을 쥔 그는 남은 삶을 조용히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한물간 갱스터의 여생은 단짝친구 발(알 파치노)이 28년 만에 출소하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세수하는 발의 등 뒤에서 몰래 총을 겨눈 채로 그는 거듭 망설인다. 귓가에는 며칠 전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보스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그 자식을 죽여. 그놈은 내 아들을 죽였어. 너를 유일하게 살려둔 이유도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였어.” 기력이 떨어진 닥에게 유일한 친구를 죽이라는 명령은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몇 곱절 더 버겁게 만든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닥과 발은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친구 허쉬(앨런 아킨)를 구출해낸 뒤, 인생의 마지막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현명한 노인처럼, <멋진 녀석들>은 ‘왕년’을 애써 들먹이지 않는다. 피셔 스티븐스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셋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들의 전성기를 되살리려는 헛된 노력을 삼간다. 이 영화의 이야기 속에는 알 파치노, 크리스토퍼 워컨 그리고 앨런 아킨이라는 노익장들의 현재가 묘하게 반영되어 있다. 70, 80년대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세 노년 배우의 모습과 호시절을 지나보낸 세 갱스터의 모습은 인물과 배역을 혼동하게 만들 정도로 연거푸 겹친다. 젊은 시절의 카리스마와 폭발력 대신에 넉넉한 여유와 연륜으로 무장한 이들은 버려진 촬영세트 같은 도시의 밤거리를 누비며 잔잔한 유머와 감동으로 영화를 끌어나간다. 이 영화 자체도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는 듯이 차분하고 조심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렁설렁 해치우지만 척척 들어맞는 연기 도사들의 앙상블이 두말할 나위 없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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