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하비, 이현학, 김휘. 네명의 영화과 자퇴생이 ‘어떻게 우리는 영상작업으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유럽에서 1년간 체류했는가’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잉여인간의 히치하이킹>(901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참조)은 스스로를 하릴없는 백수 ‘잉여인간’이라 칭하는 네 청년의 2000km 생존 여행기다. 이호재가 <씨네21>에 작품을 보내왔고, 정식개봉은 아직 미정이지만, 독특한 소재와 경험담이 녹아든 독특한 영상에 관심이 갔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호재와 하비(왼쪽)를 만났다.
-유럽 숙박업체의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숙박을 해결한다는 무모한 도전을 어떻게 시작한 건가.
=이호재_방학 때 넷이 함께 영상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밤새워 작업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사이도 돈독해지더라. 그때 현학이가 불쑥 “유럽 가서도 이렇게 작업하면서 생활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하기에 내가 바로 실천하자고 했다.
-굳이 다니던 영화과를 그만둬야 했나.
=이호재_고민이 그리 크지 않았다.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는 선배들이 많다. 데뷔까지가 워낙 지난한 데다 그동안 겪어야 할 생활도 너무 힘들다. 단편 만들어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좋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최상의 상황을 가정해봐도 입봉하기까지 몇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비_예술작업이라는 게 학벌, 학업이 승부수가 될 수는 없다. 난 지금은 영상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곳을 흔히 말하는 간판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다.
-홍보 영상을 만들고 이 과정을 담을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해야 했다. 장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하비_넷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필요한 것들을 구비했다. 비행기 티켓값과 홍보 영상 작업에 사용한 장비인 캐논 EOS 5D Mark II와 모노포드 한개를 샀다. 그리고 남은 80만원으로 출발했다.
-2시간19분의 러닝타임 중 절반은 일거리가 없어 겪는 고생담이다. 중간에 포기도 생각했겠다.
=하비_유럽에 도착하자마 집에 가고 싶더라. 일이 없어 70센트 바게트 하나로 점심, 저녁을 때우고 숙박은 노숙을 했다. 추워서 가져간 책과 옷을 태워 불을 피우기도 했다.
이호재_여행 뒤에 군대 간 현학이가 하는 말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군 생활이 그때보다 더 편하다고 하더라. 다 포기하고 한국행을 결심한 순간, 우연히 로마의 한 호스텔에서 관심을 보여왔다.
하비_좀 과장하면 1초에 한번씩 메일이 올 정도로 성공했다. 숙식은 기본에, 호스텔로 오는 비행기 티켓을 제공해주겠으니 와서 작업을 해달라는 업체도 속속 생겨났다.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골라 가는 처지로 바뀌었다.
-개봉할 생각은 없었나. 영화제에 출품하거나 독립배급망을 타진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호재_많은 관객이 보려면 일단 메이저 배급사의 배급망을 타는 게 맞다고 보고, 지금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제작의 원칙은 최소비용에 최소인원이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모임이 주도하는 자급자족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그걸 제작 자본으로 활용하면 그게 또 하나의 새로운 제작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하비_이번에는 음악을 가지고 구걸을 해보자. (웃음) 마침 호재 형과 휘가 베이스를, 현학이가 키보드를 칠 수 있다. 난 드럼이 조금 된다. 가서 배우자, 그리고 그 과정을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다.
이호재_둘은 군대에 입대했고, 하비도 곧 군에 가야 하니 2년 안에는 실현 불가능한,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런데 앞선 잉여작업에서 느낀 희열이 크다. 히치하이킹은 얻어서 타고 가는 거고, 잉여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손을 내밀어 잡고 앞으로 갈 수 있다. 잉여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생산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