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번. 사진가 노순택이 <씨네21>에 보내온 원고와 사진의 숫자다. 햇수로 무려 5년이다. 공교롭게도 이 5년은 이명박 정부와 함께한 시간이다. 우리는 ‘초현실적인 현실’을 살았고 노순택 작가는 사진과 글에 그 풍경을 담았다. 그것들이 <씨네21>을 거쳐 책으로 나와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5월14일, 노순택 작가의 개인전 <어부바>가 열리는 통의동의 류가헌 갤러리에서 그를 만나 지난 5년을 되돌아보았다.
-내일 베니스로 출국한다고 들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맞춰 한국 현대미술의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가 열린다. 그 프로젝트팀에 소속됐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활동도 활발하다. 그동안 어떤 작업들을 했나.
=외국에서 했던 것 중 가장 큰 전시는 <비상국가>였다. 분단 이후 한반도가 때론 정말 비상상황인 적도 있었지만 일상마저 비상상황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 남한 정권 입장에서는 북한이 필요한 존재가 됐다. 똑같은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면 북한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외부의 강한 적, 남한이나 미국을 상정함으로써 체제 결속을 한다. 이렇게 닮아 있는 남한과 북한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작업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전체 사진작업의 전제 같은 것인가.
=그렇다. 북한사회의 디테일한 부분은 모르기 때문에 남한사회의 디테일한 부분을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 문제나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는 그 자체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논의가 이뤄지기 전에 친북이냐 종북이냐는 하는 논란이 일어난다. 이런 식의 사회적인 논의가 폭력적으로 압축되고 단순화되는 모습들이 서글프지만 한편으로 우습다는 거다. 어떤 것이 해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바라본 풍경을 사진적으로 재현하고 또 그것에 대한 생각들을 질문으로 기능하는 텍스트와 사진으로 되돌아보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문제의식으로 작업을 해왔다.
-‘사진의 털’ 연재가 5년째다. 책도 출간됐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첵 서문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고경태 전 편집장이 제안했을 때는 뜻밖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겨레21>에서 제안을 했으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기도 했다. 왜냐하면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겨레21>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잡지니까 글의 스타일이라든지 사진을 선정하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고 그게 또 사실이었다. 그래서 즐겁게 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줄은 몰랐다. 2년 정도면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사진가 중에서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었지만 <씨네21>과 일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좋았던 건 시의성있게 제주 강정마을이나 용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 분들에게 죄송함을 덜 수 있는 매체가 <씨네21>이다. 현장에서 <씨네21> 잘 봤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기뻤다.
-지난 5년이 이명박 정부의 5년과 겹친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처음에 이 연재를 할 때는 사진사 가운데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이야기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풍경을 엮어서 사진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어쩌다 보니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과의 최소의 연대라고 할까.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에 글을 쓰고 사진 싣는 걸 잘해야 한다는 부분이 이뤄졌다는 측면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의 면밀한 보고서는 아니라도 한 사진가가 바라본 보고서처럼 됐다. 이것도 나쁘지 않더라.
-용산, 대추리, 강정에서 보내온 사진들을 보면 저널리즘 사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경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 경계를 묻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사진은 맥락에 굉장히 의존적인데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 따라서 저널리즘 사진으로 읽히기도 하고 아트 사진으로 읽히기도 한다. 저널리즘 사진에서는 많은 정보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정보에 충실한 사진이다. 캡션으로 촘촘하게 설명을 달아놓기도 한다. 나는 매체에 종사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매체 사진가들이 찍는 그 공간에서 약간 다른 스타일을 취하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 오히려 정보가 약간 빠져 있는 사진을 찍는다. 뭐라고 규정해야 할지 헷갈릴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어떤 집회, 시위 현장에서 노순택 작가는 어디에 있을지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때로는 매체 사진기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매체의 저널리스트를 찍기도 한다. 매체 시진기자는 매체라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갖고 있다. 나는 그게 없기 때문에 똑같은 사진을 고화질로 갤러리 전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똑같은 현장에 있지만 그들이 놓치는 것, 미처 보지 못한 것, 아니면 그들의 모습을 찍는다. 미디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알려주는 데 충실하다면 나는 이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질문으로 기능하는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의 스타일에 있어서는 현실이지만 초현실 같은 장면들을 사진적으로 충실하게 보여주고 싶다. 마치 연극적인 장면 같다. 그래서 연출된 사진이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실제로 연출을 하는 작가들도 많지 않나.
=그런 작가들이 많다. 영화감독처럼 미국 게티즈버그 전투 같은 걸 재연해서 사진으로 찍는 작가도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잘할 수 없다. 나는 관찰에 기반한다. 연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묘한 순간들이 있다. 이번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2만개의 부품을 시민모금을 통해 사서 한대의 자동차를 조립하는 H-20000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사진에 기반해서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두 개의 문>의 홍지유 감독이 연락을 해왔다.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다고 처음에 말씀드렸다. 잘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발생하는 숙제인데 잘할 자신이 없더라. 한순간이 지나가버리면 다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못하니까. 그래서 영상에 기반해서 연출을 하고 옆에 있다가 사진을 찍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사진의 털> 서문에 사진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 소개하지 않은 사진의 매력이 또 있을까.
=책에 써 있는 것 말고 정말 중요한 매력은 사진은 육체노동이라는 거다. 사진은 그때 그 공간에 있어야 한다. 강정마을 사진을 찍으려면 강정에 가야 한다. 일종의 물리적 접촉이다. 서로 때리고 만지고 하는 건 아니더라도 빛이 구럼비 바위에 떨어지고 반사된 빛이 카메라로 들어오고 상이 맺히는 건 사실 정말 물리적인 행위다. 이런 물리적 행위가 힘들게 하기도 한다. 용산참사를 직접 목격하고 사진에 담으면 이것이 대체 어떤 일이었는지,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는 강박감이 발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