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캐리 멀리건]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랑처럼
2013-05-23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캐리 멀리건

씨씨와 데이지의 만남은 흥미로운 우연이다. 1주 차이로 개봉하는 스티브 매퀸의 <셰임>과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모로 다른 영화다. 전자가 섹스에 중독된 어느 현대인의 삶을 해부한 소규모 작가영화라면 후자는 1920년대 뉴욕 배경의 고전소설 위에 차려낸 할리우드식 진수성찬이다. 하지만 그 물리적 간격에도 전자의 씨씨와 후자의 데이지는 어딘지 닮았다. 섹스 중독자 오빠의 집에 얹혀살며 오빠의 직장 상사와 섹스를 나누는 애정결핍환자 씨씨. 부호 톰 뷰캐넌과 결혼했지만 성공해서 돌아온 제이 개츠비의 구애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유부녀 데이지. 극히 이기적인 저 사랑 중독자들을, 데뷔부터 사랑의 열병에 길들여져온 여배우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다. 이제 그녀는 사랑이란 단어의 심장에 더 깊이 칼을 꽂아넣을 줄 알게 된 듯하다.

캐리 멀리건은 화려한 미모나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랑하는 배우는 아니다. 영국에서 호텔리어 부모님의 평범한 양육 방식 아래 성장한 그녀는 평범한 옆집 소녀 같은 매력을 지녔다. 스타보다 누이나 여동생이나 ‘아는 여자’를 더 닮은 그녀는 관객의 마음을 아주 서서히 훔치는 쪽이다. 오죽하면 <오만과 편견>, 거기서도 시끌벅적한 베넷가 여자들 중 가장 사건이 없는 키티 베넷 역으로 데뷔전을 치렀을까. 그런데 어쩌면 그녀의 범속함이 그녀를 다양한 사랑 이야기에 뛰어난 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귀천을 막론하고 사랑에 웃고 울며 삶을 이어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실어나르기에 그녀만 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

“사랑 이야기를 특히 사랑한다”는 멀리건의 어린 분신들은 조숙한 편이었다. 그녀의 첫 주연작 <언 애듀케이션>(2009)에서 어른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던 여고생 제니가 기억난다. 차분하고 명민하나 아직은 순진한 소녀는 옥스퍼드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결혼하기로 결심한 상대가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유부남이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첫 섹스 전 차분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날 어른으로 대해줘요”라고 말했던 소녀는, 그 와중에도 끝까지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현실과 마주한다. 론 셰르픽 감독은 “연약하고도 안정감있는 그녀에게 단숨에 눈길을 빼앗겼다”고 말했는데, 보통 또래 여배우에게 드문 안정감이 특히 그녀의 연기에 중요한 재료였던 것 같다. 그 안정감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삶을 지속해야 하는 소녀들의 것에 속했다.

그 뒤로도 한동안 멀리건은 바위 같은 성품으로 사랑의 대가를 감당해내는 소녀 혹은 여자를 연이어 연기했다. 가령 <그레이티스트>(2009)의 로즈는 4년 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남자친구를 교통사고로 잃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이를 가졌음을 깨닫는데, 절망에 빠지기는커녕 남자의 가족을 찾아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런가 하면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위니 게코도 돈 놀음에 영혼까지 팔아버릴 기세인 월가 마초들 사이에서 사랑에 불필요한 거품이 빠질 때까지 인내할 줄 아는 현명한 약혼녀였다. 심지어 <네버 렛미고>의 캐시는 장기 기증용으로 제작된 시한부 클론임에도 섣불리 삶을 재촉하지 않으며 뒤늦게야 서로 마음을 열게 된 평생의 짝사랑 상대 토미를 임종까지 지켜봤다.

그녀들을 거치며 멀리건의 ‘평범한’ 매력은 한층 깊어졌다. 확실히 그녀는 광장을 압도하는 스타보다 어느 날 문득 눈을 마주쳤을 때 어김없이 설레게 되고 마는 아는 여자쪽이었다. 그런 멀리건의 옆집 여자 이미지를 반대로 판타지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인 것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다. 멀리건의 말마따나, 온갖 뒷거래와 보복이 몰아치는 동네에서 한 사내가 옆집 여자를 지켜내는 내용의 영화는 “성에 갇힌 공주와 그녀를 구하는 빛나는 갑옷의 기사가 주인공인 다소 초현실적인 동화”다. 그런데 이 동화에 이르러 그녀의 ‘안정감’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불륜 관계인 두 남녀가 평온한 결말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위기일발이지 않은가. 그런 위태로움이 그녀의 연기에도 깃들어 있다. 윈딩 레픈은 “보호의식”까지 일으키는 그녀 덕분에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의 심리를 훨씬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셰임>의 씨씨는 남녀 관계에 있어 훨씬 피상적인 수준에 다다른다. 고급 클럽에서 가수로 일하며 섹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씨씨는 멀리건에게 “내 인생에서는 결코 끄집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추출해내게 했다. 그전 1년 동안 “자신을 반복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그녀는 씨씨가 맛보게 해줄 변화가 절박했고, 매퀸을 찾아가 끈질긴 구애를 벌였다. 결정적인 매치메이커는 체호프였다. 3년 전 무대에 올린 <갈매기>의 니나에 여전히 빠져 있었던 그녀는 자리를 뜨려는 매퀸을 붙잡아두고 사랑에 실패하고 불행을 전전하는 니나의 대사를 외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니나가 자기 오빠와도 온전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씨씨 속에도 얼마간 녹아들었을 것이다. 실제 촬영현장에서 멀리건은 마이클 파스빈더와의 즉흥 연기를 통해 기꺼이 그런 씨씨의 불완전한 육체와 정신을 발가벗겼다.

시대는 다르나 씨씨와 마찬가지로 풍요의 환락에 취해 사는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훨씬 가혹하게 사랑의 신화를 산산조각 낸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는 무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라고, 김영하 소설가는 몇년 전 새로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며 개츠비가 일생을 바쳐 얻고자 했던 여자 데이지에 관해 썼다. 모델이 된 젤다 피츠제럴드의 일기와 편지에 빠져 살았던 멀리건도 “자신이 솜털처럼 가볍고 알맹이가 없어서” 더욱 비극적인 데이지의 사랑을 이상하게 들뜬 목소리로 옮겨냈다. 그 멀리건의 데이지는 바즈 루어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캐리가 데이지를 드러내는 방식은 대단히 섬세해서 개츠비로 하여금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게 만든다.” 그녀는 데이지를 금방 터질 듯한 비눗방울처럼 다뤄야 함을 알았다. 그녀가 개츠비의 낙천주의 대신 톰 뷰캐넌의 권력과 재력을 택한 데이지를 끝까지 소설보다 덜 밉게 묘사한 것도 그런 측은지심이 낳은 결과물일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어루만져온 멀리건의 필모그래피는 점점 지조와 도덕을 내다버린 채 더욱 방탕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 점이 어쩐지 그녀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게 만든다. 당장 그녀 앞에 놓인 두편의 영화는, 1960년대 뉴욕의 포크신을 누빌 코언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와, 코카인 거래에 연루된 여자의 이야기에 뛰어든 제임스 마시 감독의 <홀드 온 투 미>다. 늘 “새로운 것에 끌린다”는 그녀가 다음에는 어떤 사랑을 수줍게 혹은 대범하게 쓰다듬을지 궁금하다.

magic hour

연극 무대처럼 연기한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위대한 개츠비>에서 웅장한 세트와 엄청나게 공을 들인 소품, 의상은 캐리 멀리건으로 하여금 데이지 뷰캐넌으로 변신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극단적인 예는 개츠비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멀리건이 마음 깊이 데이지로 ‘빙의’할 수 있었던 장면은 그보다는 좀 덜 으리으리한 장면이었다. 개츠비-데이지-톰의 삼각관계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플라자 호텔 장면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바즈가 카메라를 모두 창밖에 달고 세트에는 배우 5명만 남겨놓고 나갔다. 우리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고, 조명이나 스탭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두어번 테이크를 간 뒤 우리는 우리 식으로 연기했다. 영화에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말 좋았다.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 지금이 2011년이란 사실조차 까먹었다.” 연극이 주는 흥분을 최고로 여기는 그녀가 그 장면에서 어떻게 개츠비의 이상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허영을 폭로하는지 지켜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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