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연애하듯, 유혹하듯
2013-05-28
글 : 윤혜지
사진 : 오계옥
<몽타주> 최민영 편집기사

Filmography

<몬스터>(2013), <설국열차>(2013), <몽타주>(201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오싹한 연애>(2011) <최종병기 활>(2011), <만추>(2010), <아내가 결혼했다>(2008)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음란서생>(2006) <웰컴 투 동막골>(2005),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편집 데뷔(2004)

“편집 과정은 연애할 때 상대방을 유혹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러 정보를 감춘 채 호기심을 유발해야 할 때가 있다.” 최민영 편집기사의 말대로 <몽타주>는 “볼수록 헷갈리는” 영화다. <몽타주>는 스릴러의 예상 가능한 진행수순을 밟지 않는다. 서사의 논리가 안 맞는 몇몇 지점은 과감하게 돌파하고, 관객은 엔딩에 가서야 ‘그 장면’이 플래시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수의 기대를 배신하는 이 편집은 어떤 효과를 의도한 것이었을까. 웬만한 반전엔 순순히 넘어가지 않는 요즘 관객이 “극의 흐름과 보는 재미에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전개에 속도를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눈 높은” 관객과 정면으로 맞서기 위한 또 하나의 비결은 공동작업이다. 그가 공동작업을 즐기는 이유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디테일”을 추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감성이 영화에 좋은 맛을 더하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이진 기사와 함께 편집했던 <만추>처럼 <몽타주>도 공동편집을 맡은 박경숙 기사의 “여성적인 센스”가 더해져 감성적인 스릴러로 완성됐다.

도전을 즐기는 그답게 편집 일을 시작한 계기도 일종의 ‘무데뽀 정신’에서 비롯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간 최민영 기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편집석사과정까지 마쳤다. 미국에서 영화 일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지구를 지켜라!>가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한국으로 옮겨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연고도 없이 무작정 한국의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 싶었는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 이 영화들은 굉장한 비주류가 아니겠나. (웃음)”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를 한국에 붙들어둔 사람은 이재한 감독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최민영 기사의 편집 데뷔작이 됐다. 숱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스케일이 엄청났던” <설국열차>와 “다양한 형식의 편집을 시도했던”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그가 “특히 애정을 쏟은 작품”이다. “신을 어떤 앵글로 끝낼지, 어딜 자를지에 따라 영화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결국 편집은 1초에 24번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C47포스트스튜디오의 공동대표로서 편집에 전념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시간을 쪼개 강의도 병행한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뭘 시키면 제시간에 끝내는 아이들이 없다. 한국의 영화 현장이 시간적인 면에서 자유롭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공부한 미국영화연구소는 밤이 되면 아예 전기가 나갔는데. (웃음)” <아테나: 전쟁의 여신> <아이리스2> 등 드라마 편집에도 도전해봤다. “촬영 테이프를 배달할 퀵서비스맨이 항시 대기하고 있고, 방송이 나가는 와중에 그날 방송분을 편집하기 일쑤였던 살인적인 스케줄”인데도 “실시간으로 반응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는 품새에 에너지와 여유가 넘친다. “숨은 판타지”에도 관심이 많다. 은근히 영화의 감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라서다. <웰컴 투 동막골>을 대표하는 멧돼지 추격 신과 팝콘 터지는 장면은 편집 당시엔 굉장히 반대가 심했던 장면이란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나? 내 말이 맞았지. (웃음)” 현재 그의 손에서 편집을 마치고 후반작업 대기 중인 작품으로는 <조선미녀삼총사>가, 편집 중인 작품으로는 <몬스터>와 <더 파이브>가 있다. 이 영화들 어딘가에도 그가 새긴 “판타지”가 은밀하게 숨어 있을 터. 이제 “최민영표 편집의 묘”를 찬찬히 확인해볼 일만 남았다.

헤드폰

“가령 예전엔 공포영화를 하면 무서운 음악을 들으며 신을 생각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반대로 신나는 힙합을 듣는다. 기존에 해온 방식을 답습해 매너리즘에 빠질까봐서다.” 편집하다 막힐 때면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다는 최민영 편집기사에게 오랫동안 사용한 헤드폰은 최고의 리프레시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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