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사랑, 그 이후 <저스트 어 이어>
2013-05-29
글 : 주성철

‘워킹 타이틀 로맨틱코미디’라는 표현에 현혹되어서는 곤란하다. 감독과 각본을 겸하며 <저스트 어 이어>로 장편 데뷔한 댄 메이저 감독이 영국 출신이긴 하지만 지금껏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2006), <브루노>(2009), <독재자>(2012) 등에서 래리 찰스 감독, 샤샤 바론 코언과 함께했던 시나리오작가이자 프로듀서였음을 먼저 기억해야 할 듯하다. 행여 <노팅힐>(1999)의 <She>나 <러브 액츄얼리>(2003)의 <All you need is love> 같은 사운드트랙의 정서를 떠올렸다가는 큰일이다. <저스트 어 이어>는 패럴리 형제나 주드 애파토우가 워킹 타이틀에 스카우트됐다면 만들었을 법한 영화다.

냇(로즈 번)과 조쉬(라프 스팰)는 첫만남으로부터 7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게 되면서 채 1년도 되기 전에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즈음 냇에게 매력적인 클라이언트 가이(사이먼 베이커)가 등장한다. 냇을 미혼으로 알고 있는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애정공세를 펼치고 냇 역시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한편, 조쉬 역시 이전 여자친구였던 클로이(안나 패리스)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가까워지게 된다.

<저스트 어 이어>는 사랑의 시작보다는 그 이후를 그리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미 만나고 결혼하는 과정을 그대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미 갈등은 예견된다. 다소곳하고 교양있는 냇은 철없는 친구 대니(스티븐 머천트)와 어울려 ‘진상 댄스’를 선보이는 조쉬를 보면서 눈을 감아버린다. 게다가 대니는 은어와 속어를 남발하며 ‘19금’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축사로 결혼식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여기에 비하면 역시 워킹 타이틀의 영화였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1994)에서 보여준 소동은 약과다.

작가 조쉬를 연기한 라프 스팰은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도 나이 든 파이(이르판 칸)를 만나 글을 구상하던 작가였다. 하지만 <저스트 어 이어>에서는 동일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백수’에 ‘철부지’,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영화의 전형적인 ‘너드’다. 가장 색다른 재미이면서 또한 기존 워킹 타이틀 팬들의 불평을 자아낼 만한 요소다. ‘리얼’인지 ‘판타지’인지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결말 또한 흥미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과거 워킹 타이틀이 낳았던, 말하자면 워킹 타이틀이라는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켰던 수많은 전설의 명캐릭터들(가령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 존스 혹은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가 연기했던 그 매력적인 남자들)을 떠올려보면 재미와 별개로 훈훈한 교감의 맛은 덜한 편이다. 이것을 워킹 타이틀의 공동회장 팀 베번의 얘기대로 ‘도전’이라 불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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