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노년의 황혼기 <아이 오브 더 스톰>
2013-05-29
글 : 주성철

“세상사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프닝의 담담한 독백은 <아이 오브 더 스톰>이 얘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자, 유한한 삶을 부여받은 모든 인간들의 회한일 것이다. 상류층 가문의 엘리자베스 헌터(샬롯 램플링)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늘 침대에만 누워 있다. 그의 곁에는 두명의 간호사와 가정부, 그리고 유언장을 책임질 변호사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외로 추방됐던 양아들이자 배우 바질 헌터(제프리 러시)와 친딸인 도로시(주디 데이비스)가 찾아온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이, 그들은 갑작스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엘리자베스 헌터의 치매가 불현듯 오랜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감지된다. 엘리자베스의 값비싼 물건을 탐내는 간호사와 가정부,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서로 살가워 보이지 않는 바질과 도로시 등 이미 어긋난 것들은 다시 꿰맞추기 힘들어 보인다. 노년의 황혼기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이 그러한 것들의 봉합에 열성적이라면 <아이 오브 더 스톰>은 그저 혼란스럽게 바라만 본다. 그 사이에 끼어드는 장들은 영화 속 플래시백까지 거의 1인2역을 한 샬롯 램플링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다. 프레드 셰피시 감독은 호주 출신으로 <록산느>(1987), <어둠 속의 외침>(1987), <러시아 하우스>(1990) 등을 만들며 주목받았고 어느덧 칠순을 넘겼다(1939년생). 그 자신의 정직하고도 혼란스런 현재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엘리자베스 헌터는 ‘상류층 사람이라면 언제든 자기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저 집에만 있을 뿐이지만 가정부로 하여금 “늙고 병든 나를 멋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달라”며 온갖 치장을 한 채 그저 집안에만 ‘존재’한다. 프랑수아 오종의 <사랑의 추억>(2000)과 <스위밍 풀>(2003)을 비롯해 <레밍>(2005)과 <멜랑콜리아>(2011)에서 이미 느꼈던 샬롯 램플링 특유의 결벽증적인 연기는 집안의 공기를 지배한다. “관계 뒤의 냄새가 너무 좋아”라며 기괴함에 가까운 섹슈얼한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그 모습은 서커스단의 침팬지와 거의 사랑에 가까운 관계에 빠졌던 오시마 나기사의 <내 사랑 맥스>(1986), 1970년대 아이티를 배경으로 돈으로 젊은 남자를 사는 것에 당당했던 로랑 캉테의 <남쪽을 향하여>(2005)를 떠올리게도 한다. 말하자면 <아이 오브 더 스톰>은 가장 개성적이고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이어오고 있는 여배우 중 하나인 샬롯 램플링에게 바쳐진 헌사 혹은 미리 만든 추모영화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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