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미래의 지구 <애프터 어스>
2013-06-05
글 : 송경원

인류를 수호하는 영웅 사이퍼 레이지(윌 스미스) 장군은 아들 키타이(제이든 스미스)와 함께 레인저 훈련 행성으로 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곳은 자연의 역습으로 인류가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3072년의 지구다. 생존자는 단 두 사람, 게다가 사이퍼는 두 다리가 부러진 상황, 조난 신호를 보낼 장치를 찾기 위한 키타이의 모험이 시작된다.

요약하자면 M. 나이트 샤말란표 보이스카우트 영화다. 사랑하지만 소통하지 못하던 아들과 아버지가 불의의 조난을 당하고, 서로의 손발이 되어 역경을 헤쳐나가는 사이 마음속 앙금을 털어낸다. 아들은 성장하고 아버지는 솔직해지는, 익숙하지만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문제는 이야기와 배경 묘사 사이의 개연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SF에서 배경 디자인은 그 자체로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애프터 어스>의 배경들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계속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낚싯바늘 없는 낚시질이 계속 되어봤자 실망감만 더할 뿐이다.

<애프터 어스>는 M. 나이트 샤말란이 줄곧 받아온 오해의 연장선에 있다. 샤말란의 세계는 일관되게 서스펜스를 향한다.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반전에의 강박은 그에 따른 결과물일 뿐 샤말란의 영화에는 언제나 짙은 긴장감의 정조가 깔려 있다. 미술, 구도, 연기, 사운드가 모두 그러한 분위기를 피워올리는 데 집중한다. 때문에 시퀀스별로 떼어놓고 보면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서스펜스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 혹은 장르와 만났을 땐 무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SF 블록버스터는 샤말란과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하다. <애프터 어스>의 재앙은 디자인, 미술, 설정 등 충분히 장점이 될 만한 요소들이 이야기와 따로 놀며 마치 불필요한 허풍처럼 관객을 실망시킨다는 데 있다.

특히 블록버스터다운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기껏 미래의 지구까지 데려가놓고 벌어지는 일은 체험학습 수준이다. 위험한 행성으로 변했다는 지구의 모습이 TV 속 정글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은 허망해질 수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볼 땐 조밀하게 형성된 긴장감도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내러티브의 진행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어, 결국 시각적인 만족과 이야기의 탄탄함 어느 것 하나 이뤄내지 못한다. 스페이스 오페라라기보다는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소소한 모험담, 무거운 성장담이다. 그나마 윌 스미스가 별다른 액션이 없음에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영화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시종일관 뛰고 구르는 제이든 스미스는 아직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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