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쓸쓸한 중년의 욕망, 그리고 좌절 <아이, 애나>
2013-06-05
글 : 김효선 (영화평론가)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조지 스톤(랠프 브라운)이라는 남자가 살해된다. 간밤에 그는 애나(샬롯 램플링)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과 함께 있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딸과 같이 살던 애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 커플이벤트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조지를 만났던 것이다. 형사 버니(가브리엘 번)는 사건 현장에서 마주친 애나를 의심하면서도, 그녀의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된다. 버니는 또다시 짝을 찾아나선 애나에게 우연을 가장해 접근하고, 이후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이, 애나>는 애나 그리고 조지의 아들 스티비(맥스 디콘), 스티비와 한탕을 모의한 친구까지 범인으로 추정될 만한 세 사람을 먼저 제시한 뒤에, 산발적인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 당일에 벌어졌던 일들을 재구성해나간다. 감독 버나비 사우스콤은 주연을 맡은 샬롯 램플링의 아들로 <아이, 애나>는 그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엘자 르윈이 쓴 동명 소설을 직접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가 런던 주택단지의 차갑고도 스산한 외양 속에 인물들의 고독한 내면을 비교적 잘 투영해낸 것에 비해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어수선하며 마침내 밝혀진 애나의 진실도 어떤 극적인 충격이나 완결된 스릴러가 주는 만족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샬롯 램플링과 가브리엘 번, 두 관록의 배우를 지켜보는 즐거움은 결코 적지 않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의 욕망을 갖고 있는 쓸쓸한 중년 남녀의 좌절을 두 배우는 진중하게 연기해낸다. 특히 올해 66살의 샬롯 램플링은 더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슬픔과 외로움, 이를 쉽게 내색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고통, 낯선 사내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자식마저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녀린 육체에 담아 호소력있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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