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사기를 하나 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집 근처 개량한복 가게에서 몇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개량한복이란 꽤 비싼 물건이어서 가게 수입은 대부분 함께 팔던 자질구레한 소품과 언제 들여놓았는지 모를 허름한 티셔츠 등에서 나왔다. 저녁 타임 아르바이트였던 나의 임무는 그 물건들을 오다가다 들른 술 취한 고시생들에게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어느 저녁, 얼굴이 발그레한 고시생 하나가 가게에 들어왔다. 나는 딱 한벌 남은 티셔츠를 팔고 싶었다. 때는 90년대 후반, 장소는 무채색만 넘실거리던 신림동 고시촌, 나는 연분홍 티셔츠를 들고 활짝 웃었다. 고시생은 곤란해했지만, 나는 그처럼 얼굴이 하얀 남자가 아니라면 이런 옷을 권할 수도 없다고, 요즘 분홍색이 유행이라고, 보라고, 딱 한벌 남지 않았느냐고(이건 사실이었지) 사기를 쳤다. 그리고 한동안 그 고시생이 가게 유리문 밖을 지나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칙칙한 고시촌 거리에서 연분홍 티셔츠를 입은 고시생은 어찌나 눈에 띄던지. 미안했다, 고시생. 지금은 고급 공무원이나 법조인이 되어 나 같은 점원에게 사기당하지 말고 명품 정장만 입고 살기를.
그리고 오랫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하지만 죄는 사라지지 않는 법, 1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어느 밤, 나는 그때 그 연분홍을 다시 만났다. 위대한 개츠비씨가 분홍색 양복을 입었다며 욕을 들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커다란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분홍색. 개츠비가 좋아하는 여자 데이지의 남편이 옥스퍼드 나왔다며 무슨 분홍 양복을 입느냐고 비웃을 때마다 나는 괜히 뜨끔했다. 왜 그랬어, 개츠비, 좋은 양복도 많으면서 딴 거 입지. 그 시절 그 고시생도 저렇게 놀림받았을까.
하지만 분홍색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를 책임져, 알피>(2004)의 첫 장면에서 알피는 분홍색 셔츠를 들고 말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처럼 남성미가 넘치는 사람들은 분홍색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고는 ‘점잖은’ 구치 정장에 분홍색 셔츠를 받쳐 입고 나간다. 그래도 예쁘기만 해서, 그 옷 한벌로 후리는 여자만 여럿이다. 중요한 건 조화와 절제, 그리고 자신감인 것이다.
또는 <발렌타인 데이>(2010)의 리드가 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그는 꽃처럼 고운 분홍색을 사랑한다. 꽃분홍 점퍼에 연분홍 티셔츠와 야구 모자, 여기에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면 패션의 완성이다. 온통 분홍과 빨강이 넘실대지만 리드는 해맑기만 하다. 개츠비처럼 움찔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조화와 절제는 부족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건 역시 자신감이다.
그러니 자신있는 남자라면 지금이라도 개츠비처럼 차려입을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 의상을 제공한 정장 브랜드 브룩스 브러더스는 ‘개츠비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옥스퍼드 나온 남자라면 도저히 입을 것이 못된다는 분홍 양복이 들어 있다. 다만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 돈도 많아야 한다. 재킷이 698달러, 바지가 298달러, 셔츠가 135달러에 분홍 줄무늬 타이가 98달러50센트, 도합 1229달러50센트가 있다면 ‘피츠제럴드 핏’의 정장 한벌을 장만할 수 있다. 다행히 1974년작 <위대한 개츠비>에서 로버트 레드퍼드가 입었던 것보다는 색이 훨씬 연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원작자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평생 브룩스 브러더스의 고객이었다.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처음 만난 피츠제럴드가 “그와 잘 어울리는 브룩스 브러더스의 양복에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피츠제럴드가 좋아해서 자주 입었던 브룩스 브러더스의 버튼다운 셔츠는 요즘은 흔히 ‘옥스퍼드’(그 옥스퍼드는 아니지만) 셔츠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