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대륙의 역사, 중국의 얼굴
2013-06-12
글 : 주성철
2013 중국영화제, 6월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CGV여의도와 부산 CGV센텀시티에서
<일대종사>

드디어 왕가위 감독이 양조위, 장쯔이와 함께 <일대종사>로 한국을 찾는다. 오는 6월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CGV여의도와 부산 CGV 센텀시티에서 열리는 2013 중국영화제(주관 CJ CGV, CJ E&M)의 올해 개막작이 바로 <일대종사>다. 지난 2006년 첫 출범한 중국영화제는 그 동안 국내에서 중화권의 화제작들은 물론 미개봉 신작들까지 최신 중국영화들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소화해왔다. 특히 올해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일대종사>를 비롯해 첸카이거 감독의 ‘젊은 변신’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수색>, 이연걸의 정극 아버지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설효로 감독의 <해양천국>, 펑샤오강 감독의 역사 블록버스터물의 계보를 잇는 <1942> 등 미개봉 화제작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처럼 올해 영화제는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얼굴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거장의 얼굴’, ‘배우의 얼굴’, ‘새로운 얼굴’이라는 세 가지 섹션을 마련했다. 폐막작은 오기환 감독의 한•중 합작 연출작 <이별계약>이다.

아무래도 관심의 초점인 <일대종사>(2013)는 도입부부터 엽문(양조위)의 일당백 결투로 시작한다. 소나기가 쏟아붓는 가운데 간결하고도 파괴력 넘치는 동작으로 악당들을 제압하는 엽문의 모습이, 왕가위 특유의 감각적인 편집과 스타일로 드러난다. 1930년대 일제 침략기, 엽문은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중국 쿵후의 세대교체 중심에 선다. 송혜교는 엽문의 아내로 출연해 (중국어 연기 문제가 가장 컸겠지만) ‘사소한 말실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사려 깊은 부인으로 등장한다. 엽문이 귀가하면 물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고, 엽문 또한 아내의 피곤하고 지친 발을 씻겨주는 장면이 애틋하다. 왕가위 영화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안락한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인생에 후회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회한에 젖는 양조위와 장쯔이의 모습에 왕가위 영화 특유의 섬세한 멜로 감성이 배어든다. 남권을 북부에 전파하고 싶어 하는 궁(宮) 선생이, 은퇴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엽문을 염두에 두게 되고, 그의 딸인 궁이 아가씨(장쯔이)가 금루로 찾아가 그의 실력을 확인하는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거의 춤을 추듯 합을 겨루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에로틱하다. 더불어 이곳저곳을 떠돌다 결국 홍콩에 터를 잡은 광둥무술의 자존심 엽문을 내세우는 시선에서 홍콩을 향한 왕가위의 변함없는 애정을 읽을 수 있다.

<해양천국>

개막작 왕가위 <일대종사>와 첸카이거 <수색> 등 관심 집중

거장의 얼굴 섹션에서는 <현 위의 인생>(1991), <패왕별희>(1993) 등을 만들며 한때 장이모 감독과 함께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었던 첸카이거의 신작 <수색>(2012)과, <샤워>(1999)로 재능을 알린 뒤 <해바라기>(2007)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촬영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장양 감독의 신작 <노인요양원>(2012)이 상영된다. 조우정과 고원원이 출연한 <수색>은 공공버스 안에서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아 인터넷상에서 마녀사냥에 몰린 한 젊은 여성이, 그 영상을 뿌린 기자를 찾아내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최근까지 <매란방>(2008), <천하영웅>(2010) 등 자신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대작 사극에 집착해왔던 첸카이거의 새로운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첸카이거가 중국 5세대를 대표한다면 지하전영에서 출발한 장양은 6세대를 대표한다. <노인요양원>은 아들과 불화를 겪다가 노인요양원에 들어간 노인 라오꺼(허환산)와 그가 요양원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노인들은 어느 날, 톈진에서 열리는 공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그들만의 공연을 준비한다. 준비 도중 몇몇 노인이 다치면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들은 생의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고 버스를 빌려 머나 먼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애타게 찾고자 했던 바다의 풍광과 가족의 소중함이 한데 어우러진 따뜻한 작품이다. 장양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유머와 위트가 작품 곳곳에 가득하다.

배우의 얼굴 섹션에서는 중화권을 대표하는 두 스타 유덕화와 이연걸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심플라이프>와 <해양천국>이 상영된다. 두 영화 속 그들의 캐릭터를 대표하는 소품은 바로 ‘잠바’다. 성공한 영화제작자인 로저(유덕화)는 4대에 걸쳐 자신의 집안일을 해온 아타오(엽덕한)가 갑작스런 중풍으로 쓰러지자, 홍콩과 중국 본토를 오가며 그녀를 돌본다. 아타오 또한 병원의 동료들과 깊은 우정을 맺는다. 액션이나 멜로영화의 씩씩한 주인공이 아니라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유덕화의 변신이, 허안화 감독 특유의 애정어린 시선과 겹쳐 원숙미를 더한다.

<해양천국>에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이연걸)는 홀몸으로 자폐아 아들을 키우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 아들이 홀로 살아갈 것이 두렵다. 수영과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물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그는 아들에게 바로 그 아쿠아리움의 거북이처럼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한다.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가르쳐나가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연걸이 일찌감치 사묘와 함께 <소림오조>(1994), <이연걸의 영웅>(1995)에서 부자 연기를 선보였던 모습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계륜미가 아쿠아리움의 스쿠버다이버로 우정출연한다.

새로운 얼굴 섹션에서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감독, 배우, 작가, 프로듀서 등 다방면에서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신성으로 떠오른 서쟁과 최근 중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로 성장한 바이바이허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등화도의 <실연 33일>(2011)은 7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자신의 오랜 친구와 바람이 난 데 충격을 받고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웨딩플래너 샤오시엔(바이바이허)에 관한 이야기다. 인기 온라인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바이바이허는 폐막작 <이별계약>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인재경도>(2010)의 속편 격인 서쟁의 <로스트 인 타일랜드>(2012)는 가정도 버린 채 오랜 연구 끝에 슈퍼가스 연료를 발명한 슈랑(서쟁)이 투자자를 찾아 타이로 떠나 겪는 모험을 그린다. 거기에 두명의 친구가 가세하여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일종의 ‘중국판 <행오버> 혹은 <최가박당>’이랄 수 있다. 중국 극장가에서 인기가 많은 정통 코미디영화로, 개봉 당시 <아바타>(2009)의 종전 최고 흥행기록을 넘어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942>

실화 배경 ‘특별전’ 펑샤오강 감독의 <1942>

실화를 배경으로 한 ‘특별전’ 섹션에서는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팀 로빈스가 출연한 펑샤오강 감독의 <1942>(2012)를 만날 수 있다. 중일전쟁 이후 중국 허난성에 닥친 역사적인 기근과, 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그를 기사로 써내려가는 <타임> 기자로 출연하고, 팀 로빈스는 중국의 슬픈 운명을 지켜보는 신부로 나온다. 하지만 장제스 총통(진도명)이 이끄는 정부는 일본군과의 전쟁만 중요할 뿐 백성의 고통은 외면한다. 해럴드(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장제스를 만난 자리에서 개들이 인육을 뜯어먹는 사진까지 보여주며 각성을 촉구하지만, 장제스는 기근에 대한 걱정보다 그 사진이 <타임>에 실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장제스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전쟁의 참상이 어우러져 펑샤오강 감독의 이전작들에 비해 액션의 물량은 줄었지만 근대사의 상처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외 특별전 섹션에서는 중국 산간 지역을 케이블카로 다니며 한 평생을 바쳤던 한 시골의사의 감동 실화를 옮긴 뢰헌화 감독의 <케이블카 의사>(2012), 중국의 대표 여류작가 샤오홍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기영화인 후오지엔치 감독의 <샤오홍>(2013)이 상영된다(자세한 시간표는 94페이지 게시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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