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에 의하면 특정 ‘예술’에 대한 선호는 대체로 학력 자본과 출신 성분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음악’적 취향만큼 한 사람의 계급을 분명하게 확정해주고 분류해주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음악회에 가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연극을 보러 가거나 미술관에 가는 일보다 더 대중적이지 않기도 하지만 ‘음악은 정신예술 중에서 가장 정신적인 것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정신적 깊이에 대한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음악은 종종 주인공의 정신적 순수성 혹은 선천적인 문화적 감수성을 증명하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령 <귀여운 여인>의 비비안이 출신 성분에 가려진 ‘진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라 트라비아타>를 활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리자 랑세트 감독의 <퓨어>는 순수한 음악적 열정에 휩싸인 소녀의 냉혹한 모험담을 통해 문화적 허위의식과 부르주아의 위선을 드러낸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고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버린 카타리나(알리시아 비칸데르)는 그날 이후 자기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여전히 남루하다. 일하던 학교 식당에선 해고되고, 생활력 없는 엄마는 그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져 자기에게 의존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신경안정제를 권한다. 그러던 중 레퀴엠을 들으러 갔던 음악홀에서 우연히 채용 면접관과 만나게 된 카타리나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거짓으로 포장해서 수습직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매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리허설을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그녀를 오케스트라 지휘자 아담이 유혹한다. 카타리나는 아담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순간적인 열정이 휩쓸고 간 뒤 그들의 관계는 비정하고 치사하게 뒤틀려간다.
이 영화는 예술적 취향이나 문화적 교양을 판단하기 위한 지표로서 ‘대중’ 혹은 ‘상업’ 등과 상반되는 의미인 ‘순수’의 이면에 숨겨진 욕망과 권력의 작동방식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아담은 카트리나를 유혹하기 위해 쇼펜하우어와 카라얀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한다. 그들의 철학이나 음악적 성취를 알기는커녕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생소했던 카트리나는 아담의 지식과 그것이 환기하는 ‘고귀한’ 삶에 매료된다. 아담과 카트리나의 관계는 현대사회의 문화적 질서를 구성하는 경제, 학력, 성별적 계층 구조를 매우 효과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카트리나가 아담을 통해 학습한 ‘용기만이 살길이다’를 실천적으로 적용한 이 영화의 결말은 매우 통쾌하지만 비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