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노인과 로봇의 하이브리드
2013-07-01
글 : 김성훈
<로봇G> 야구치 시노부 감독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화를 챙겨본 팬들에게 <로봇G>(6월20일 개봉)는 낯선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데뷔작 <비밀의 화원>(1996)부터 <스윙걸즈>(2004)까지 청춘물을 주로 만들어왔던 그 아니던가. 물론 성장담에 대한 그의 취향은 비행기 소동극 <해피 플라이트>(2008)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했던 신작 <로봇G>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다. 전자 제품 회사에서 일하는 세명의 연구원은 로봇 박람회를 앞두고 개발한 로봇을 박살낸다. 해고 위기에 처한 그들은 로봇 모형에 들어갈 사람을 찾고, 그들이 낸 구인광고를 보고 스즈키 할아버지가 로봇 조종사로 지원한다. 일상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는 것으로 익히 알려진 그의 관심사가 어떤 계기로 바뀐 것일까.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서면으로 보내왔다.

-당신은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봇G>는 혼자 살고 있는 스즈키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일본의 노인들이 은퇴한 뒤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연결된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고 싶어 하는 게 노인들의 절실한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로봇 안으로 들어가 로봇을 직접 조종한다는 게 영화의 설정이다.
=이족 보행 로봇을 볼 때마다 ‘로봇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영화는 ‘노인과 로봇의 하이브리드’라는 꽤 엉뚱한 설정이긴 한데, 로봇 선진국인 일본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로봇에 관심이 있었나.
=1996년 혼다가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인 P2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전작 <스윙걸즈>가 상영한 뒤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국제로봇전시회나 시테크 재팬(CEATEC JAPAN, 아시아 최대 규모의 최첨단 IT/일렉트로닉스 종합전시회-편집자) 같은 학술 행사를 찾았다. 와세다대학, 게이오대학, 오사카대학 등 로봇을 연구하고 있는 여러 대학의 이공학부 교수와 학생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로봇 안에 들어간다고 얘기하지 않고 취재했기 때문에, 완성된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스즈키 역을 맡은 이가라시 신지로는 배우가 아닌 가수다. 어떤 인연으로 캐스팅하게 됐나.
=로봇을 작은 크기로 제작한 까닭에 마른 체형을 지닌 남자가 캐스팅 최우선 순위였다. 물론 연기력도 갖춰야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었다. 그런데 오디션 당일에 병이 나서 못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건강한 어르신을 캐스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촬영 도중 배우가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면 큰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이가라시 신지로였다. 현역 가수인데, 올해로 일흔다섯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라이브로 여러 곡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자랑하는 분이다.

-배우가 로봇 안에서 연기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 같다.
=그는 현장에서 무척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해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주기도 하고, 무리한 촬영이라도 ‘한번 더’를 외치며 의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팬티 바람이나 엉덩이 노출도 거리낌없이 해 보였다. 보통 어르신 배우에게는 부탁하기 어려운 연기였는데, 가수 출신이라 그런지 감독의 곤란한 주문을 자유롭게 받아주었다.

-로봇 가면은 무표정이지만 로봇 안에서 활짝 웃고 있을 할아버지의 표정이 절로 그려지더라.
=로봇인 뉴 시오카제의 얼굴은 될 수 있는 한 무표정으로 만들었다.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야만 관객은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스즈키 할아버지의 기분을 상상하고, 즐거워할 것 같았다.

-당신 역시 언젠가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사실 스즈키 할아버지는 내 생각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다. 나 역시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나면 그처럼 하루 종일 한가해질지도 모르겠다.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노후를 맞아야 한다면 나 역시 로봇 안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도시의 젊은이들이 산에 들어가 임업에 종사하게 된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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