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암에 걸렸다. 병에 걸린 아내를 남편은 돌봐야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카르페 디엠>은 절절한 순애보,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암에 걸린 아내를 둔 이 남편의 대처는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범주를 빗나간다. 남편은 지금 유방암에 걸린 아내의 병치레로 발목을 잡혔고, 그 보상심리로 딴 여자와 바람도 피운다. 자, 이제 당신이 그를 향해 비난을 퍼부을 차례인데, 여기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 남편에게 거리낌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네덜란드 작가 레이 클룬의 자전적 소설 <사랑이 떠나가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불행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관찰기다. 암스테르담에서 잘나가는 사업체를 경영하고, 정열적인 아내 카르멘(캐리스 밴 허슨)과 결혼해 예쁜 딸과 함께 풍족한 삶을 살고, 아내 몰래 쾌락의 욕구까지 충족하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남자. 스테인(배리 아츠마)에게 아내의 유방암 판정은 단순히 감상이 아닌, 지금껏 유지해온 풍족한 생활의 변화를 뜻한다. 원작에 따르자면 스테인은 아내의 투병으로 인한 일종의 ‘고독공포증’(모노포비아)이라는데, 굳이 그런 상태를 빌리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그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어투는 솔직하다. 카르멘이 병에 걸리기 전, 스테인과 카르멘(이름마저 정열의 카르멘이다!)의 에로틱한 생활을 보여주는 만큼 병의 진행과정, 이를테면 암 진단, 방사선 치료, 유방절제 뒤 가슴 등도 아끼지 않고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 체념하고, 삶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과정들을 자세하게 드러내는데, 그래서인지 감상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투병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 중 <카르페 디엠>은 감정이입의 온도는 낮은 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