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같은 사람이 있다. 거기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언제나 자리를 지킬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에 존재감을 쉽게 잊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대체 불가능의 존재감을 지닌 거인이다. 지난 6월19일 또 한명의 거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스 역으로 유명한 배우 제임스 갠돌피니는 시칠리아에서 열리는 제59회 타오르미나필름페스티벌 참가를 앞두고 로마를 여행하던 중에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심장마비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게 죽음이라지만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51살의 한창 나이기에 슬픔은 더욱 황망하게 찾아왔다. 현재 할리우드를 뒤흔들고 있는 애도의 물결은 갠돌피니와 작품을 함께했던 동료배우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스포츠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6월22일 월요일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는 모든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고, 뉴저지 출신의 메이저리거 신시내티 레즈의 토트 프레이저는 타석에 들어서며 <소프라노스>의 주제곡을 틀어 갠돌피니를 추모했다. 단순히 한 배우의 죽음을 넘어 흡사 뉴저지가 낳은 아들이라도 떠나보내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임스 갠돌피니는 명실상부 뉴저지를 대표하는 배우다. 1961년 미국 뉴저지에서 나고 자란 뉴저지 토박이인 데다 대표작인 <소프라노스>는 뉴저지를 무대로 하는 마피아 이야기다.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갈고 닦은 그는 1992년 <유대교 살인사건>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고, <트루 로맨스>(1993)의 킬러 버질로 분하며 인상 깊은 악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크림슨 타이드>(1994)의 밉살맞은 장교나 <겟 쇼티>(1995)의 능청스런 스턴트맨 등을 통해 존재감있는 악역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출연작 <소프라노스>를 빼고 갠돌피니를 논할 순 없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시즌6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 <소프라노스>는 2013년 미국작가협회에서 역대 최고의 드라마로 선정될 만큼 평단과 대중의 인기를 고루 받은,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정신쇠약 직전의 이탈리아 마피아와 그의 가족이 미국사회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소프라노스>는 장르로서 갱스터물의 변주를 넘어 이민자 중심의 국가인 미국의 근간을 파헤치며 일상의 피로를 전한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섬뜩하면서도 한없이 가볍고, 또 피곤한 농담. 그 중심에 제임스 갠돌피니의 얼굴이 있다.
갠돌피니는 <소프라노스>를 통해 TV드라마의 아카데미 격인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세 차례나 수상하는 영광을 거머쥐었고, 무게감있는 캐릭터 배우를 넘어 미국사회의 어떤 단면을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뉴저지 마피아 가족의 일상을 그린 <소프라노스>는 그야말로 갠돌피니를 위해 마련된 특등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와 캐릭터간의 이런 화학반응은 연기력이나 스타성에 대한 문제를 넘어선 영역에 있다. 배우로서 생애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기적을 그는 이미 체험한 것이다. 그렇게 갠돌피니는 토니 소프라노스가 되었고 토니 소프라노스는 전설이 되었다.
이후 생활형 마피아의 피로와 모순을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가져온 그는 <멕시칸>(2001),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킬링 소프틀리>(2012) 등에서 꾸준히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뽐냈다. 한편으론 <인 더 루프>(2009), <웰컴 투 마이 하트>(2010)를 통해 일상의 특별함을 전하기도 했다. 단 한 장면에 나와도 전체를 지배하고, 화면 내내 나와도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존재감과 일상성의 경계 위에 선 배우. 사람이 진정으로 죽는 때는 심장이 멎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웰컴 투 마이 하트>에서 더그 역을 맡았던 갠돌피니의 마지막 대사가 귓가를 맴돈다. “난 아직 죽지 않았어. 당신도 안 죽었고. 우린 아직 살아 있다고!” 이제 그는 떠났지만 스크린 위에 남은 그의 연기는 언제까지나 대체 불가능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