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은 김병서 감독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조의석 감독이 시나리오의 윤곽을 잡고 두 사람이 함께 프리 프로덕션을 마무리 지은 다음 현장을 공동으로 지휘했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에 모조리 싸웠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싸울 일이 없었다”는 말은 그만큼 꼼꼼하게 의논하고 준비해서 임했다는 뜻이리라. 결과적으로도 탄력있는 작품이 나왔다. <감시자들>의 일등 공신 조의석, 김병서 공동감독을 만났다.
-<감시자들>은 홍콩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원작으로 삼고 각색하여 만들었다.
=조의석_루키 스토리, 즉 젊은 여형사의 성장담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그 당시에 내가 준비하던 것 중 하나가 감시받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반대로 가본 셈이다. 감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재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김병서 감독이 원작을 먼저 보고 제안해주었다. 김병서는 원래 촬영감독이지만 연출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소개했고 이번 영화의 촬영뿐만 아니라 공동감독까지 맡기로 했다.
김병서_홍콩영화를 원래 좋아한다. 그 당시 뭔가 다른 일 때문에 우연히 <아이 인 더 스카이>를 보게 됐다. 여형사의 성장담이라는 점은 나 또한 흥미로웠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일을 소재로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플롯 자체가 거대하지는 않아도 밀도가 높아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영화였다. 저 영화가 저렇게 홍콩을 담고 있다면 저걸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싶었다. 원작이 운명과 감정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것으로 느껴지는 구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했을 것 같다.
=김병서_메가 시티로 그리고 싶었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는 공간들도 포착하고 싶었고. 63빌딩, 남산타워 등등.
조의석_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울의 지도를 사는 일이었다.
-영화에는 서울의 주요 장소가 등장하고 또 그것들을 잇는 일정한 동선이 있다.
=조의석_중심이 되는 장소는 테헤란로, 청계천, 이태원 등이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밀도감이 주는 재미를 서울이라는 보다 넓은 규모의 도시에서는 어떻게 넓힐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 안에서의 캐릭터들도 고민이었고.
-특히 핵심적인 장소가 있었던 건가.
=조의석_아무래도 청계천 신이 하이라이트인 것 같다. 범죄자 그룹과 경찰 그룹이 총출동하여 부딪치는 곳이니까. 사람이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고. ‘그림자’(정우성)가 도주하면서 어떤 이면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될 때 거긴 어떤 곳이어야 할까, 사람이 급격히 많아지는 공간이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여의도도 떠올렸는데 청계천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감시자들>에서 동선을 창조해내는 건 ‘그림자’다. 감시반은 그 ‘그림자’를 감시하고 쫓아다니는 것이고.
-초반부 테헤란로 자동차 액션 장면은 촬영 자체가 큰 일이었겠다.
=김병서_그걸 다 여섯 시간 만에 촬영해야 했다. 그래서 카메라도 여러 대였다. CCTV나 블랙박스 등 여러 가지 질감들도 섞인다. 영화에서는 초반에 나오지만 찍은 건 영화 마지막 회차 직전이었다. 워낙 대형 액션 장면이라 다른 장면들을 촬영하며 틈나는 대로 준비했다.
-동선만큼 시선도 중요한 영화다. 시선의 설계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조의석_개념적으로 특별하게 생각한 건 시선들 사이에 어떤 층’(또는 막)을 두는 것이었다. 감시하는 사람과 감시받는 사람들 사이에 종종 그 층(또는 막)이 놓이도록 했다. 한편 ‘그림자’는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자로, 황 반장(설경구)은 땅의 지휘자로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두 그룹의 비주얼적 차이도 두었다. ‘그림자’에게는 부감을 많이 주었고 황 반장과 하윤주(한효주)를 비롯하여 땅에 있는 감시반들은 아이 레벨을 되도록 유지했다. 재미있는 건 항상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그림자’가 청계천 장면에서는 위치가 바뀌어 감시반들보다 아래쪽에 있게 된다는 거다. 그 밖에 템포, 심리적인 클로즈업도 많이 고민했다.
-촬영감독으로서 김병서 촬영감독이 지향한 건 무엇이었나.
=김병서_라이브한 동선을 중요시했다. 카메라를 최대한 고정하지 않았고 쫓고 쫓기는 사람들의 관계나 심리적인 긴장감을 보여주고자 했다. 촬영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건 리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한 테이크 안에서도 여러 개의 포인트들이 중첩적으로 필요했다. 숏과 숏의 충돌이나 무빙의 방향성, 사이즈 등등으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위서사 혹은 디테일에 관하여 신경을 많이 썼다.
=조의석_사실은 원작 영화를 틀어놓고 그 영상을 보며 동시에 시나리오를 새로 써봤다. 일종의 필사를 해본 거다. 그러다보니 물음들이 생기더라. 어라, 왜 저기서 멈췄지, 하는 그런 질문들이 생겼고 부족하다 싶은 것들을 새로 채워넣기 시작한거다. 엔딩에 대한 고민도 그중 하나였다. 엔딩은 버전만 4개 정도였으니까. 영화초반부 황 반장이 하윤주를 테스트하는 과정도 그렇게 해서 바뀐 것이다. 뭔가 황반장의 위트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황 반장이라면 저기서 저렇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위트있게 종이에 “출근해”라고 적는 것까지 설정한 것이다. 그 밖의 것이라면, 범죄의 사이즈를 좀 키웠고, 아무래도 적이 강할수록 주인공도 특별해지는 것이라 악인 캐릭터인 ‘그림자’를 좀더 잔인하고 강박적인 인물형으로 만들었다.
-‘그림자’가 그런 인물형이라면 하윤주, 황 반장은 어떤 인물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조의석_그 인물들 역시 각색 과정에서 볼륨이 좀 커진 것 같다. 하윤주는 한마디로 톰보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 반장은 무언가 감시반의 리더로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날로그적 인간의 대표 격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운세도 말하게 하고 말도 안되는 구라도 피우게 했다. 그는 작전을 짤 때도 구식 장기말로 부하들을 지휘한다. 물론 전적으로 황 반장의 그런 느낌은 설경구가 연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병서_하윤주, 황 반장이 중요한 건 물론이었는데, 촬영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자’라는 인물도 중요해지더라. 그가 바로 이 영화의 어떤 대척적인 긴장감을 살릴 수 있는 인물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림자’의 몫을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의 몫을 더 키우면 이 영화가 일종의 듀얼드라마가 될 가망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캐릭터들의 면모가 더 깊어져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가령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히트> 정도까지는 가야 하는 거다. 그러다 결론을 맺은 건, 이 영화가 하윤주의 성장담이면서 동시에 세인물, 하윤주, 황 반장, ‘그림자’의 밸런스가 중요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엔딩이 그러한 장면인가.
=조의석_말한 대로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다. 사실 김병서 감독은 원작의 엔딩에 가까운 엔딩을 선호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는 세 인물이 다 표현되는 장면이 필요하다는 점에 우리 둘 다 동의한 것이다.
김병서_정우성은 그 장면에서 자기를 너무 멋지게 그리지 말라고 말했지만 황 반장 역의 설경구는 그 엔딩을 두고 고독한 늑대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조의석 감독은 전작 <조용한 세상> 이후에 6년여 만의 연출이다. 전작보다 흥미로운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조의석_6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면서 게을러본 적은 없다. 준비는 계속 해왔다. 하지만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니 내내 불평만 하고 있더라. 그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스>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게 됐다. 거기 나오는 신문사 편집장이 이런 말을 한다. “네 열정을 불평하는 데 쏟으면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이게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농담하며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더 새롭고 소중하다. 그런데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 보니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김병서 감독은 <감시자들>로 연출 데뷔했다. 앞으로도 연출과 촬영을 병행할 계획인가.
=김병서_촬영 일을 해오면서 막연한 갈증을 느꼈다. 영화에 더 깊이 참여하고 싶은 갈증이랄까. 그래서 이 영화가 나의 성장담이기도 한 것 같다. 시사회가 끝나고 조의석 감독이 그러더라. 차분해라, 들뜨지 말아라, 라고. 연출은 촬영을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또 다른 세계였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병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