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등인 네가) 1등 하려면 66명을 죽이면 돼.” <명왕성>은 이 농담 같은 극중 대사의 논리를 그대로 실천하는 영화다. 숲속에서 교복을 입은 유진(성준)의 시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살인용의자로 유진과 같은 반 학생인 준(이다윗)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준은 직접 만든 사제폭탄으로 인질극을 벌인다. 그리고 영화는 이 충격적이 사건 뒤에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아이들만을 모은 진학반과 ‘토끼 사냥’이라는 비밀서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과연 아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짓을 저지른 걸까, 그리고 유진을 죽인 사람은 정말 준인 걸까.
<명왕성>은 입시전쟁에 내몰린 아이들과 그 과정에서 피폐해진 삶에 문제제기를 하려고 극단적인 설정을 과감히 끌어들인다.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비밀서클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영화의 아이들은 통과의례 삼아 살아 있는 토끼의 피를 나눠 마시고, 마음에 안 드는 아이를 괴롭히고 이를 카메라로 기록하며 낄낄댄다. 이 과정에서 정신이 이상해 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들을 보며 모든 걸 거부하기로 한 아이는 오히려 더 강한 폭력을 끌어들여 이 사태를 끝장내려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이 지금 십대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자극적인 요소들을 늘어놓으며 문제의 심각성만을 묘사할 게 아니라면 이후에 따르는 책임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감독은 이 불행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아무런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끝까지 파국으로 밀어붙이는 쪽을 택한다. 이때 남는 것은 자기 파괴적 충동이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다시 한번 끔찍한 삶을 강요받는다. 이 결론 앞에 망연자실한 건 단지 극중 형사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