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휴 잭맨] 젠틀맨 그러나 길들여지지 않는
2013-07-22
글 : 윤혜지
<더 울버린>으로 돌아오는 휴 잭맨

세상 모든 히어로들에겐 자신과 충돌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셰인 블랙의 ‘아이언맨’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번엔 울버린의 차례다. <더 울버린>의 휴 잭맨은 이번 영화에서 최초로 죽을 기회를 얻는다. 영원히 상처입지 않고,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였던 그가 평범한 인간이 될 기회를 얻어 마침내 죽음과 직면하게 됐을 때, 영생과 불멸의 형벌 속에 몸부림치던 그가 마침내 고통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게 됐을 때, 울버린은 어떤 제스처로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그의 또 다른 자아, 울버린

휴 잭맨의 커리어에서 울버린을 빼고 논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휴 잭맨에게 울버린은 21세기와 함께 찾아왔다.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 밀레니엄을 맞이한 셈이다. 2000년,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에서 그는 마블 시리즈의 사연 많은 히어로로 다시 태어났다. 호주 출신의 무명배우 휴 잭맨이 길고 날카로운 강철 손톱과 늑대의 눈,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신체를 지닌 후천성 돌연변이 울버린을 만난 것이다. 이후 10여년간 울버린은 휴 잭맨의 또 다른 자아로서 그의 안에 자리했다. 러셀 크로와 더그레이 스콧을 제쳐두고 과감하게 휴 잭맨을 선택한 브라이언 싱어조차도 휴 잭맨의 울버린이 이렇게나 유명해질 줄은, 고독한 히어로의 대명사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역시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을 맡은 <엑스맨2>(2003)와 싱어로부터 연출을 넘겨받은 브렛 래트너의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까지 <엑스맨> 3부작을 끝낸 이후, 울버린은 엑스맨 중에선 최초로 자신만의 스핀오프 시리즈까지 갖게 됐다. <엑스맨> 3부작을 끝낸 직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휴 잭맨은 “더이상의 <엑스맨> 시리즈는 없을 것”이라 했지만, 그렇게 사장시켜버리기에 울버린은 아까운 캐릭터였다. 울버린의 스핀오프 시리즈 제작은 울버린이 엑스맨 중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휴 잭맨을 향한 대중의 애정과 신뢰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사랑에 보답하듯 휴 잭맨은 개빈 후드의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에 제작자로서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엑스맨 탄생: 울버린>으로 그는 그간 꺼내지 않았던 울버린의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로건이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는지, 무시무시한 힘의 보상으로써 울버린이 어떤 미친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낱낱이 까발려진다.

지표를 잃어버린 영웅

곧 개봉할 <더 울버린>은 1982년에 <엑스맨>의 원작자 크리스 클레어먼트가 만든 첫 번째 <울버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다. <더 울버린>의 시간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다. 울버린은 전작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고, 홀로 영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형벌처럼 받아들인다. 황폐해진 울버린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더 울버린>을 “영웅이 되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영웅의 이야기”라고 함축했다. 시나리오는 감독이 적어놓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을 것이다’라는 메모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로건은 모든 인간을 등지고 홀로 살아간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울버린>은 그가 싸워야 할 전투가 더이상 없고,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영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휴 잭맨 역시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특별한 목적도, 생각도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간다. 일이 끝나면 기계적으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간다. 집까지 운전했던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세상을 위해 뭘 하고 있지?’ 고민하기도 한다. 울버린의 삶엔 후회와 고통만이 가득하다. 스스로를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살아갈 이유와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영화는 이런 중대한 질문을 다룬다.”

지겹겠지만 역시 ‘맨 중의 맨’

실제의 휴 잭맨은 ‘맨 중의 맨’이란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다. 휴 잭맨은 그가 무명이던 시절에 만난 8살 연상의 연인 데보라 리 퍼니스와 결혼했다. 결혼 뒤 그는 “아내와의 결혼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며 애처가를 자처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부인이 두 차례의 유산을 겪자 그는 아내를 위로하며 두명의 아이를 공개적으로 입양했다. 아이들을 입양하며 그는 “입양은 결코 숨길 만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나에게 완벽한 축복이다. 아이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훨씬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도, 그와 함께 일하는 스탭들에게도 휴 잭맨은 다시 없을 젠틀맨이다. <더 울버린>을 함께 작업한 스턴트 코디네이터 데이비드 레이치도 그를 상찬하기 바빴다. “액션에서 울버린의 고통이 절절하게 드러나길 원했다. 리얼리티를 위해 휴에게 실제로 바닥에 세게 부딪치라고 했는데 그는 나의 어려운 요구에도 대단히 너그럽고 적극적으로 임해줬다. 그는 언제나 헌신적으로 임하는 배우이며, 내가 지금껏 일해본 배우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모든 사람들이 휴 잭맨이 아닌 울버린을 상상할 수 없듯 이미 휴 잭맨도 울버린을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울버린은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모습을 상징한다. 그는 진정한 힘과 의리, 어떤 적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물론 그에게도 인간관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결점은 있다. 이 두 가지 면모의 조화가 얼마나 멋진가. 나에겐 지금도 여전히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열정이 있다.” 그 흔한 스캔들 한번 없는 성실한 배우 휴 잭맨과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 울버린의 간극을, 그리고 조화를 우린 <더 울버린>을 통해 목도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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