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 <설국열차>
2013-07-31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새로운 빙하기 도래 뒤 17년째, 한대의 기차가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 생존자를 싣고 거대한 순환선 위를 한정없이 달리고 있다. 이 좁고 긴 ‘노아의 방주’는 인간사회의 축소판이자 <메트로폴리스>부터 <매트릭스>까지 이어져온 파시즘적 가상세계의 신판본이다. <설국열차> 버전의 네오는 꼬리칸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폭동을 이끄는 그의 최종 목표는 계급간 갈등을 유지, 조절하여 설국열차의 영속을 꾀하는 윌포드(에드 해리스)로부터 엔진을 뺏는 것이다. 그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요나(고아성) 부녀의 도움을 받아 한칸 한칸 전진한다.

봉준호는 이 영화에 “기차라는 영화적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함은 의외로 액션보다 밀폐감에서 기인한다. 윌포드는 설국열차가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임을 강조하는데, 그 표현은 영화 밖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기차의 수많은 창문은 밖을 내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탈주도 혁명도 불가능해진 영화 안팎의 세계를 환기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그 불능의 감각이 때로는 액션의 정서까지 지배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생태계 교란이 아니라 폭파라고, 영화는 급진적인 결론까지 내놓는다.

메시지에 반해 이미지는 온건하다. 원작 만화의 설정만 가져와 재창조하다시피 한 작품임에도 봉준호만의 복잡하고 독창적인 시각적 게임은 자취가 묘연하다. 처음으로 한국이란 지정학적 공간을 떠나 무국적 기차액션영화에 탑승한 그는, 보편적 장르의 쾌감에 충실한 탓인지 전작들에서처럼 장르의 틈새를 벌려 문제적인 이미지들을 방류하는 의외의 재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각 칸에는 정량의 액션만 실려 있고 칸들을 잇는 문도 손쉽게 열리는 탓에, 엔진을 향한 저돌적인 질주에 꼬리칸을 탈출할 때와 같은 밀도가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는 생각해볼 만한, 봉준호의 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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