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돈을 둘러싼 갈등과 암투 <죽지 않아>
2013-08-07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군인 출신의 극우 반공주의자 할아버지(이봉규), 유산을 받아 펑펑 쓰며 놀고 싶은 손자(차래형), 돈을 노리고 이들에게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여자(한은비), 이 셋이 삼각관계를 이루며 긴장을 조성하는 스릴러다. 돈을 목적으로 살인을 계획한다는 점에서 스릴러는 맞는데 여기서 비롯되는 긴장감은 크지 않다. 오히려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신경전이 스릴있다. 지훈은 할아버지가 암으로 곧 돌아가실 거라는 말을 듣자 유산을 상속받을 꿈에 부푼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아버지는 일찍부터 할아버지 눈 밖에 났으니 자연스레 상속 1순위는 자신이라 생각한다. 지훈은 이를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 짐을 싸서 할아버지 농장으로 달려간다.

길어야 몇 개월이면 될 거라 생각했던 시골 생활이 4년째 이어지자 지훈은 더는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설상가상 할아버지는 날로 건강해지고 검은 머리까지 나기 시작한다. 실망과 분노에 찬 지훈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광란의 밤을 보낸다. 다음날 자신 옆에 누워 있는 여자를 보고 당황한 그는 고민 끝에 편지를 써놓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며칠 뒤 그 여자가 시골로 찾아온 것이다. 당황한 지훈과 달리 할아버지는 젊은 여자에게 묘한 관심을 보이고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노골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여자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불편하고 당황스럽던 지훈은 기왕 이렇게 된 터에 친구들이 농담으로 떠들던 복상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지훈의 계획과 달리 할아버지는 기운이 빠지기는커녕 하루하루 회춘하는 기색에다 여자에게 노른자 땅을 물려준다는 약속까지 한다. 초조해진 지훈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하고 전문 킬러를 고용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 풍광과 달리 돈을 둘러싼 세 사람의 갈등과 암투가 코믹하면서도 팽팽한 긴장 속에 펼쳐진다. 잡초를 “빨갱이 새끼들”이라 부르는 할아버지는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죄다 북으로 보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2대인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고 3대인 손자는 물질만능시대에 편승한 이념 없는 세대를 대표한다.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키는 설정이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출연 분량도 적고 실질적인 역할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제외된 채 할아버지와 손자로 돈과 정서가 이어진다. 겉보기에는 딴판인 두 사람이지만 내밀한 구조는 상통한다. 단순한 스토리 같지만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는 서사에 반전의 묘미까지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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