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나에게서 온 편지>
2013-08-07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사람들은 모두 먹고 섹스하며 죽는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빠, 섹시하지 않은 엄마,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8살 소녀에게 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는 수수께끼 같다. 어린 라셸(줄리엣 곰버트)에게 죽음과 섹스로 가득한 세계는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하다. 라셸은 개학 전날의 불안감으로 인해 잘 때도 책가방을 메고 자는 순하고 내성적인 소녀다. 학교에서는 얄망궂고 대담한 발레리(안나 르마르샹)와 짝이 되어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학교에서 섹시한 여선생의 은밀한 성생활을 엿보게 된 소녀들은 어른들의 괴이한 습속에 대한 호기심을 무럭무럭 키워간다. 라셸은 트레블라 선생에게 가서 자신의 마음을 상담받는다. 하지만 사는 게 버거운 사람은 어린 소녀만이 아니다.

라셸과 발레리 부모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아빠는 엉망인 자기 집 부엌은 아랑곳 않고 매력적인 싱글맘을 엄마로 둔 발레리네 부엌을 고쳐주고 있다. 한편 치매에 걸린 어머니,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어린 딸,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남편을 바라보는 엄마 콜레트(아녜스 자우이)의 마음도 복잡하다. 치매 할머니는 문득 제정신이 들 때마다 딸과 손녀가 여성으로서 행복해지도록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를 들려준다. <나에게서 온 편지>는 사랑스런 소녀 라셸이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인 한편, 사는 게 고달픈 엄마 콜레트의 설득력있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영화 속 모두가 조금씩 쓸쓸히 자기 안의 결핍을 안고 살지만, 영화는 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라간다. 관객은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발레리 엄마에게 공감했다가도,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홀로 생존한 아빠의 보이지 않는 외로움에도 이입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복고적 분위기에, 누구도 미워할 수 없도록 사랑스럽게 만들어낸 캐릭터 구축이 영화에 설득력을 더한다. 사랑스런 꼬마 소녀 라셸 역을 맡은 줄리엣 곰버트는 연기 경험이 없는 초보지만 천진하고 엉뚱한 매력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배우 출신이면서 <타인의 취향> <룩앳미>의 감독이기도 한 아녜스 자우이의 엄마 연기도 인상적이다. <나에게서 온 편지>는 행복하고 귀여운 영화다. 하지만 끝내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죽음은 홀연하고 마음은 쉽게 유혹에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 문득 찾아드는 환희와 비애를 한층 자연스럽게 영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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