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소녀 엠케이는 오랜만에 아빠와 살기 위해 돌아왔지만, 괴짜 과학자 아빠는 숲속 작은 존재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에만 골몰해 있다. 초록 숲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우연히 기이한 소동에 빠져든 엠케이는 숲의 생명을 품은 꽃봉오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제아 노드, 수다쟁이 달팽이 듀오와 함께 험난한 모험을 펼치게 된다. 어두운 세력을 이끄는 맨드레이크는 초록 숲의 생명을 파괴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에픽: 숲속의 전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생령의 인격화, 소녀의 모험담, 선악 갈등의 패턴을 선보이는데, 독창성에 욕심내지 않고 고전적인 방식을 따랐다. 작은 존재의 기이한 모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엄지공주>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유럽 동화의 전통을, 숲의 정령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웃집 토토로>나 <모모모케 히메> 같은 에코 아니메의 전통을 반반씩 계승하고 있다. 식물을 의인화하는 방식에선 <환타지아>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전능한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설정에서는 <오즈의 마법사>가, 선악의 교전에 우연히 제3자가 개입되어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떠오른다.
대신 영화는 초록 숲을 사실적이고도 아름답게 재현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에 기반하면서도 숲속의 빛과 결의 디테일을 살린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숲의 생기 가득한 공기처럼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주얼화하는 방식은 기존의 스펙터클한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방식이다. 서양적이거나 동양적(혹은 일본적)이지도 않은 숲을 만들어낸 실력도 일품이어서, 정글도 정원도 아닌 ‘숲’ 자체가 제대로 부각되었다. 한국 애니메이터의 참여로 인해 ‘리프맨’이라 불리는 숲속 작은 전사의 갑옷과 투구 디자인에는 신라시대 화랑의 특성이 투영되었다.
선한 세계가 아름다운 만큼 악의 세계와 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설정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맨드레이크와 그의 부하들의 비주얼과 교전장면은 압도적이다. 3D로서의 장점이 공중 비행과 전투 신에서 잘 살아난다. 꽃봉오리를 지키는 민달팽이 멉은 <스타워즈>의 C3PO처럼 감질나고 수다스러운 인상적인 조역으로 등장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에픽…>은 어떠한 문화권에서도 수긍 가능할 애니메이션이다. 숲의 황홀한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워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의 교전이라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엮었으며, 여기에 직관적인 캐릭터를 얹었다. 스타일은 신선하고 스케일은 웅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