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은 통각상실증 환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사용해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과감한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잇는다. 스페인 내전 발발 직전의 한 마을, 베르카노(토마스 레마르퀴스)를 비롯해 통각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외딴 병원에 실험체로 수감된다. 병원에 갇힌 채로 자란 베르카노는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해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으로 성장한다. 한편, 현재 시점에서 외과의사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뮬)는 희귀병에 걸려 부모의 골수를 기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진짜 부모를 찾아나서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끔찍한 과거와 만나게 된다.
-내전에 관한 일종의 죄의식이 영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회의 한 단면을 카인과 아벨에 빗댄 적이 있다. 영화에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사실은 피를 정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대사를 넣은 것도 스페인 내전에 관한 비유였다.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죽이는 건 형제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과 똑같이 끔찍한 일이다. 통각상실증 환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쓴 것도 전쟁이 남기는 고통에 관한 메타포였다. 억압된 상황에서 그들이 느낄 정신적인 고통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쉼없이 오간다.
=편집의 아이디어는 <대부2>에서 얻었다. 관객이 영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러티브의 블록을 겹쳐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시나리오에선 편집의 간격이 짧았는데 관객이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촬영과 편집 단계에서 호흡을 좀더 길게 갔다.
-병원 장면에선 빛의 쓰임이 도드라진다.
=병원은 실제로 프랑코 장군이 썼던 수감 시설을 참고했다. 장소가 점점 부서져야 했기 때문에 실제 공간을 쓰긴 어려웠고, 실제 공간을 토대로 CG작업을 정교하게 진행했다. 병원에 홀로 갇힌 아이에게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유일한 자극은 희미한 빛뿐이다. 아이가 바깥세상과의 교감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이가 점점 괴물로 변해가면서 조명도 점차 어둡게 썼다.
-<설국열차>의 에그 헤드를 연기한 토마스 레마르퀴스가 베르카노 역을 맡아 열연했다.
=<노이 알비노이>에서의 연기를 보고 그를 곧바로 캐스팅했다. 베르카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이고,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괴물이다. 베르카노를 연기할 토마스와 아역배우에게 동물 같고 야생적인 행동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몽환적인 미술과 음악 덕에 영화의 분위기도 잘 살아난 것 같다.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연락한 스탭이 아트디렉터였을 정도로 비주얼에 많은 신경을 썼다. 어떤 색채가 영화를 차갑게, 혹은 따뜻하게 보이게 할지를 생각했다. 엘렘 클리모프 감독의 <컴 앤 씨>와 프랑켄슈타인 박사 캐릭터는 이 영화의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다. 스웨덴 버전 <렛미인>의 음악감독이었던 요한 소데르크비스트는 미니멀하면서도 호러 분위기를 잘 살린 음악을 준비해줬다.
-결말이 지나치게 판타지로 보이기도 한다.
=괴물인 베르카노의 삶은 숨겨져 있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베르카노를 찾아가야 하고, 감춰져 있던 과거는 그를 찾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악몽이 된다. 다비드는 과거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했고, 어둠을 마주해야만 했다. 스페인의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베르카노라는 캐릭터와 이 어두운 이야기가 그들의 악몽을 대변한다. 사람들이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었다.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더라도 삶의 진실을 찾으려 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영화 <댄 레노&라임하우스 골렘>이다. 피터 애크로이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영화이고, 프로듀서는 스티븐 울리가, 각본은 제인 골드먼이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