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
[영하의 날씨] 진짜 부자가 사는 법
2013-08-12
글 : 김영하 (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 김현영 (일러스트레이션)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와 집 없는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시절,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등장인물의 부와 가난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드러낼 것인가.” 여러 답변들이 나왔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등장인물의 옷이라든가 집, 자동차 등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비싼 옷과 큰 집, 독일산 승용차 등을 타면 누구라도 그가 부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난은 반대다. 허름한 옷을 입고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기꾼이나 일부러 허름한 집에 사는 자린고비 현금 부자도 있으니까.” “무지요.”

뒤쪽에 앉아 있던 학생 하나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무지요. 가난에 대한 무지, 부에 대한 무지요.”

빙고.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재벌집 아들 주원(현빈)은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에게 천진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다.

“이봐, 길라임씨, 혹시 가난한 사람들은 뭐 사고 싶은 게 있거나 하면 오랫동안 저축도 하고 마음도 졸이고, 뭐 그러는 거야?”

그가 타고 다니는 수입 컨버터블이나 양복, 대저택이 아니라 이런 천진한 무지가 그를 정말 타고난 부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군중을 격분시킨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남겼다는 루머였다. 민중의 삶에 대해 그토록 무지하다는 것이 그녀를 실제 이상으로 사치스러운 여자로 부각시켰다. 만약 가난한 사람을 정말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싶다면 그 가난한 이로 하여금 부자들에 대한 엉터리 속설들을 말하게 하면 된다. 부에 대한 자기만의 터무니없는 오해와 과장이 그의 가난을 좀더 실감나게 만든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해. 나는 열세살이었고 잠실1단지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당시의 잠실1단지, 그리고 2단지 일부는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했다. 아파트는 계단식으로 두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였는데 두집 사이에 아궁이가 있었다. 가끔 불을 꺼뜨리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13평으로 방 두개에 거실과 부엌을 겸한 공간과 욕조가 없는 화장실이 전부였다. 강남 일대가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때라 한강 이남에는 학교가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다니던 잠실1단지의 중학교에는 압구정동이나 대치동에 사는 아이들도 더러 배정을 받았다. 잠실1단지, 2단지 등에 사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과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나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뒤섞였다.

내 짝은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으로 당시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다. 입학 첫날부터 학교쪽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고 공부도 잘했다. 얼굴도 희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았다. 유복하게 잘 자란 아이답게 예의도 발랐고 온유했다. 어느 날 우리 둘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가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를 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

그의 말에는 그 어떤 공격성이나 비아냥거림의 기운도 없었다. 그의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천진함이야말로 그가 가난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기 두명의 부자가 있다. 하나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코스모폴리스>에 등장하는 에릭 패커다. 주식과 외환 시세를 예측하는 수학적 모형을 발견하고 이를 실용화하여 엄청난 부를 쌓은 그는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는 리무진에 앉아 있다. 그는 거기서 건강 검진도 받고 부하 직원도 만나고 심리 상담도 받고 섹스도 한다.

또 한명의 부자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있다. ‘집 없는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다. 그의 재산은 20억달러라고 하지만 그런 숫자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의 재산 목록을 들여다보자. 그는 자신의 투자회사인 베르그루엔 홀딩스를 통해 버거킹,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독일 백화점 카를슈타트 등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부를 실감케 하는 것은 이런 숫자나 목록이 아니라 그의 발언들이다. 예컨대 어린 시절 마르크시즘에 심취했다고 말하는 이 유대인 미술상의 아들은 그 시절의 사상적 편력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개인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균등한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편하게 사는 이유는 부모를 잘 만나 운이 좋았다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이것이 별로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고 고치고 싶었죠.”(2013년 7월20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이런 나이브한 생각은 당연히 금방 깨진다. “10대 후반이 되면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비즈니스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자고 결심했죠.” 이런 결심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는 곧 세계적인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자면,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은 받은 바 없고 친한 친구에게 빌린 돈 2천달러로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억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10대 중반까지는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후반이 되자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알게 되고 그 뒤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거부가 된 그는 다시 가난을 ‘코스프레’하기 시작했다. 그는 뉴욕과 플로리다의 저택과 소장하던 그림 등 값나가는 소유물들을 모두 팔아치웠다. 현재 51살인 그가 공식적으로 소유한 것이라고는 아이폰과 정장 세벌, 그리고 전용기뿐이며 나머지는 종이백 하나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인데 이토록 ‘가난한’ 억만장자(서구의 언론은 그에게 ‘Homeless Millionaire’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붙여주었다)는 ‘집도 절도 없이’ 전세계의 특급 호텔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반면 <코스모폴리스>의 억만장자 에릭 패커는 로스코의 그림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림만 원하는 게 아니라 텍사스 휴스턴시에 있는, 로스코의 그림들이 벽화처럼 장식된 교회를 통째로 사고 싶어 한다. 그는 ‘무소유의 억만장자’ 베르그루엔과는 정반대의 인물로 소유의 화신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진짜 억만장자라기보다 그를 대신하는 연기자를 보는 느낌이다. 베르그루엔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실의 억만장자들은 소유로부터 탈출하고 있다. 그들은 ‘무소유’가 가장 영리하게 부를 소비하고 현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심지어 쿨해 보이기까지 하다(베르그루엔이 유명한 플레이보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이제는 집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 전세 귀족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고가의 주택에 거주하는데 무소유의 이상에 걸맞게 대부분 차도 안 갖고 있다. 리스 회사에서 빌리면 된다. 재벌들은 회사를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교묘한 방식으로 지배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재화와 용역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다.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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