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깜짝 놀랄 선물이 숨어 있다” <밀크 오브 소로우: 슬픈 모유>
2013-08-21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페루 리마 교외에 사는 파우스타(마갈리 솔리에르)는 ‘슬픈 모유’병 때문에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처녀다. ‘슬픈 모유’병은 내전 시기 강간을 당한 임신부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걸리는 병이다. 모유를 통해 엄마의 공포가 전염되어 영혼이 없는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파우스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질 속에 감자를 넣고 다니는데 이로 인한 감염으로 자주 코피를 쏟고 기절한다. 산부인과 의사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권유하나 파우스타는 완강히 거부한다. 회한의 노래를 부르며 엄마가 숨을 거두자 파우스타는 엄마 시신만이라도 고향으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삼촌 집에 얹혀사는 처지인 그녀에게는 그럴 돈이 없다. 더욱이 삼촌도 딸의 결혼준비로 도와줄 여력이 없는 상태다. 고민하던 파우스타는 시내에 있는 저택에서 하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다.

커다란 대문 너머 딴 세상을 마련한 저택에서 파우스타는 피아니스트인 안주인의 시중을 든다. 우연히 파우스타의 즉흥 노래를 들은 안주인은 노래를 한 곡 부를 때마다 진주알을 하나씩 주겠다고 제안한다. 쑥스러워 거절하던 파우스타는 하루빨리 돈을 모으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밀크 오브 소로우: 슬픈 모유>는 페루의 역사적 상처, 궁핍한 현실, 설화의 세계가 혼재된 이야기다. 슬픈 모유병에 걸리고, 헤매다니는 영혼이 아이를 잡아간다는 등의 믿음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적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종과 장례식보다 길게 그려지는 장면은 결혼식 모습이다. 가난한 이들이 정성껏 준비한 결혼식은 흥겹고 축복이 넘친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깜짝 놀랄 선물이 숨어 있다”는 결혼식 덕담은 감독의 가치관과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저택 안주인의 굵은 진주알과 소박한 사람들의 하얀 감자꽃은 대비되는 이미지로 상반된 삶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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