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맷 데이먼] 그를 멈출 순 없다
2013-08-26
글 : 주성철
<엘리시움> 맷 데이먼

서기 2154년, 버려진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이 없는 선택받은 1%의 세상 엘리시움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황폐한 지구에 사는 맥스(맷 데이먼)는 어려서부터 엘리시움으로 가는 날만을 기다려왔다. <엘리시움>은 뜻하지 않게 최후의 시간 5일 동안, 맥스가 엘리시움으로 떠나야 하는 악전고투의 기록이다. 삭발에 문신, 그리고 각종 기계장치를 몸에 붙인 맥스의 모습은 맷 데이먼 영화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외양 변화를 통한 센세이션만 기대했다면 처음부터 <엘리시움>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맷 데이먼이 <디스트릭트9>의 닐 블롬캠프와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결국 ‘순수’에 대한 갈망이었다.

<엘리시움>의 맷 데이먼 몸에는 뜨거운 노동자의 피가 흐른다. 과거 자동차 절도의 ‘달인’이었던 맥스는 마음을 고쳐먹고 드로이드(미래사회의 경찰로봇)를 만드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그에게 동네 친구들은 ‘일해서 뭐하냐’며 빈정거리기 일쑤고, 옛 동료들은 어딘가에 기똥찬 자동차가 있다며 다시 힘을 합쳐 한탕 하자고 유혹한다. 하지만 꿈에 그리는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돈이 필요하기에 그는 그저 묵묵히 일터로 향한다. 가난, 전쟁, 질병이 없는 선택받은 1%의 세상 엘리시움으로의 이주는 각박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함께 고아로 자라며 연정을 품었던 프레이(앨리스 브라가)를 향한 남모를 짝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맥스의 욕망은 결코 호화로운 우주 정거장 엘리시움에 사는 ‘시민’ 계급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프레이와 함께 저 멀리 하늘 끝 엘리시움을 보면서 꿈꿨던 유토피아를 향한 원초적 열망이다. 그렇게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강한 사랑일수록 이유없이 시작되는 법이다. 맷 데이먼은 바로 그 열망과 사랑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의 변주

맷 데이먼이 연기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은 언제나 변통이나 변칙과는 거리가 먼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는 지금껏 ‘라이언 일병’과 ‘제이슨 본’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변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 밀러 대장(톰 행크스)이 이끄는 부대는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미 행정부의 특별한 임무(삼형제가 전사하고 적진에서 실종된 유일한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수행한다.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 한명의 생명이 그들 여덟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지 끊임없는 혼란에 빠지지만, 밀러는 부하들을 설득해 그가 있다는 곳으로 향한다. 마침내 그를 찾아내지만, 그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이언은 다리를 사수해야 할 동료들을 전장에 남겨두고 혼자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다. 악전고투하며 목적지에 당도한 대원들 입장에서는 화가 치솟을 법도 하지만, 절대 떠날 수 없다는 라이언 일병의 해맑고 책임감 넘치는 표정 앞에서 그저 할 말을 잃는다.

<본 아이덴티티>(2002) 시리즈에서도 그 이미지는 여전하다. 지중해 한가운데에서 어부들에 의해 발견된 한 남자(맷 데이먼), 등에는 두발의 총상을 입었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살 속에 숨겨져 있던 스위스 은행의 계좌번호를 단서 삼아 알아낸 것이라고는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 그리고 여러 개의 가명으로 만들어진 여권이다. 미국 여권을 가지고 미 대사관을 향하던 본이 경찰을 비롯해 요원들의 추격을 받을 때, 그가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야 하고 정체는 밝혀져야 한다는 관객의 평범하고 확고한 믿음의 근거는, 그 제이슨 본이 바로 맷 데이먼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맷 데이먼의 필모그래피란, 결국 <굿 윌 헌팅>(1997)의 모범생 윌 헌팅(맷 데이먼)이 각박한 미국사회에서 멋지게 성장해나가는 과정이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레인메이커>(1997)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어머니 의뢰인을 위해 법정에 서는 신출내기 변호사 루디(맷 데이먼)는 또 어떤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도 없고, MIT 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지만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놀라운 재능을 지닌 <굿 윌 헌팅>의 천재 윌 헌팅은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라이언 일병이 되었고, 애타게 자신의 정체를 찾아 떠도는 제이슨 본이 되었으며, 이제 엘리시움을 꿈꾸는 노동자 맥스가 되었다.

포스트 제이슨 본을 만나다

<엘리시움>의 노동자 맥스가 총을 든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맥스가 일하는 공장에서 열처리 공정이 이뤄지는 기계가 고장나자, 공장 감독관은 그를 그 안으로 강압적으로 밀어넣었다.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맥스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거절하면 해고당할 것이고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티켓의 꿈은 다시 유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계 안에서 갇혀 쓰러진 맥스는 심각한 방사능에 노출됐고, 엘리시움에 있는 치료 기계를 통해 5일 안에 치료받지 못하면 죽고 만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 살기 위해 엘리시움으로 가야만 한다. ‘노동자 맥스’는 그렇게 ‘전사 맥스’로 거듭난다. 그런 <엘리시움>의 세계관은 맷 데이먼을 매료시킨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닐 블롬캠프의 전작 <디스트릭트9>(2009)을 보고 반했던 맷 데이먼은 그에게 먼저 연락해 “당신과 어떤 영화든 함께하고 싶다”며 애정을 표했는데, 그 만남이 무척 빨리 이뤄진 셈이다.

맷 데이먼은 <엘리시움>의 전사가 되기 위해 이미 삭발과 문신을 감행하여 파격적인 외모 변신을 꾀했지만, 우주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엘리시움에 침투하기 위해 다시금 스턴트 교육을 이수했다. ‘본’ 시리즈를 거치며 수준급 액션을 소화했던 그이지만 11kg에 달하는 원격제어복을 입고 액션 연기를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거추장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원격제어복은 맥 스에게 드로이드에 맞설 초인적인 힘을 선사하는 장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닐 블롬캠프의 가장 곤란한 주문은 “더 빨리 뛸 수 없어요?”였단다. 지난 10년간 가장 육체적으로 고됐던 맷 데이먼의 영화랄까.

<엘리시움>은 맷 데이먼의 기존 이미지를 잘 활용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맷 데이먼이 처음으로 우주에 간 영화’라는 점에서 변화의 양상도 느껴지는 영화다. ‘포스트 제이슨 본’이랄까, 맷 데이먼은 지난 몇년간 새로운 전성기라 해도 좋을 꽤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왔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2009)와 <히어애프터>(2010)를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조우했고, <인포먼트>(2009)와 <컨테이젼>(2011)을 통해서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절친’이 결코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로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줬으며, 금융사기를 둘러싼 경제위기의 현실을 그린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2010)과 환경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스터 브라운의 플랜B>(2011)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평범한 미국 청년이 할리우드의 진짜 1%가 되기까지, 강한 것이 오래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가는 것이 결국 강한 법이다.

<더 브레이브>
<인포먼트>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맷 데이먼의 변신의 순간들

샴쌍둥이부터 상남자까지

맷 데이먼은 언제나 그대로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그가 자기 관리를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굿 윌 헌팅> 이후 평범한 2 대 8 가르마의 모범생 이미지를 꾸준히 잘 가꿔왔다는 얘기다. 아무리 연기 변신이라도, 그가 느닷없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처럼 변신해 등장한다는 건 감히 예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엘리시움>에서 삭발을 하고 문신을 새겨넣고 기계장비를 몸에 부착한 모습은 낯설고도 신선하다. 물론 그에게도 (나름 큰 폭의) ‘변신’이라고 할 만한 순간들이 과거에도 분명 있었다.

패럴리 형제의 <붙어야 산다>(2003)에서는 그렉 키니어와 함께 샴쌍둥이로 등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햄버거를 만드는 ‘번개 버거’의 주인공이었다. 스포츠에도 뛰어나 샴쌍둥이의 체격 그대로 아이스하키 골문 앞에 서 있으면 그 누구도 뚫을 수 없었다.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 역시 그가 삭발을 감행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어울리는 가발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바탕’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금테 안경에 수염을 기른 <인포먼트>(2009)의 비즈니스맨 역할은 외모나 기질 면에서 아마도 <엘리시움>의 맥스와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캐릭터일 것이다. 오직 성공만 꿈꾸며 의도적으로 내부고발을 일삼았던 그는 스스로 마치 비밀요원이라도 된 것처럼 현실과 상상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았다. 그의 첫 번째 서부극이라 할 수 있는 코언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0) 또한 기억해둘 만한 작품이다. 오직 현상금만 노리는 허풍쟁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로 변신한 그는 거칠고 보수적이며 가진 거라곤 자존심뿐이었다. 외양 변화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장 ‘상남자’로 출연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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