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야구 좀 아는 아저씨들이 모인 까닭은?
2013-08-29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 토크쇼 현장

폭로전 양상을 띤 토크쇼가 이렇게 훈훈할 수 있다니. 스포츠로 하나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8월11일 오후 4시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 후원 토크쇼가 열렸다.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이 연출하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1956년부터 1997년까지 모국의 그라운드를 밟았던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이야기를 담는다. <야구의 추억> <야구상식사전> 등 야구 관련 서적을 다수 펴낸 김은식 야구 전문 작가와 야구 없인 못 산다는 박지훈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에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의 김명준 감독, 조은성 프로듀서, 리키타케 도시유키 일본 현지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야구를 사랑하는 아저씨들의 폭풍수다를 전한다.

박지훈_5년 전부터 이 작품을 준비한 것으로 안다.

조은성_2008년 다니던 회사가 화재로 망했다. 1년 동안 봉급도 못 받고 어렵게 살았는데, 2009년 1월쯤 인터넷으로 재일동포 모국방문 학생야구단 기사를 접했다. 당시 삶의 유일한 낙이 사회인 야구단 활동이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고, 다큐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9년이 끝나갈 때까지만 해도 연출자를 구하지 못해 혼자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2010년 초쯤 김명준 감독을 만나 연출을 의뢰했다. 중간중간 사건사고들이 많아서 5년이나 흘렀다.

박지훈_직업이 변호사라 질문이 좀 딱딱하더라도 이해해달라. 예전에 검사이기도 했고. 질문에 솔직히 답변해주기 바란다. 연출을 맡게 된 경위를 알고 싶다.

김명준_폭로를 좀 하겠다. 왜 5년이 걸렸는지. 기사를 본 조 PD는 자신의 처지와 재일동포들의 얘기가 하나로 겹쳐지면서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힘을 내 다큐를 찍기로 하는데, 실명은 거론할 수 없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분께 큰 실수를 저지르면서 프로젝트를 위기에 빠뜨린다(김명준 감독은 오프더레코드로 ‘실수’의 상세 전말을 밝혔다.-편집자). 내가 합류한 건 그 뒤의 일이다. 재일동포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고 조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출해볼래?”가 된 거다. 처음엔 야구도 모르는데 무슨 야구 얘기를 하나, 재일동포 얘기여도 민단 얘기가 아닌가 싶어 고민했다. <우리학교> 만들면서 총련 사람들만 만났으니까. 그렇게 확신을 못 갖고 있던 시기에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기사를 쓴 분을 만났다.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40여년 동안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600명이 왔다갔다. 그분들이 한국 야구에 남긴 공헌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 지금 한국야구가 이렇게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는 이 얘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재일동포에 대해 꽤 알지 않느냐.” 그 순간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은식_전직 검사가 질문하니까 의도하지 않은 것도 술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김명준_원래 거짓말을 못한다.

김은식_리키타케 PD는 한국어를 좀 하나.

박지훈_상당히 유창하다.

리키타케 도시유키_ 재일동포 3세다. 아, 이건 농담이다.

김은식_우리말 전혀 못하는 줄 알고 지난번에 만났을 때 말도 안 걸었는데….

박지훈_리키타케 PD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어떻게 합류했나.

리키타케 도시유키_ <우리학교>를 보고 크게 감동받아서 <우리학교>의 일본 내 공동체 상영을 기획했었다. 그렇게 김명준 감독과 인연을 맺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그라운드의 이방인>팀이 영화 찍으러 오사카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먼저 연락을 취했다. 오사카에 살고 있는 데다, 김명준 감독이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울 마음이 있어서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김명준_일본에서 <우리학교> 상영회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간사이공항 식당에 혼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한국어로 “김명준 감독님 아니십니까?” 묻더라. 그래서 사인을 해주고 헤어졌다. 그분이 리키타케였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촬영차 오사카에 배 타고 갔을 때도 항구에 리키타케가 마중나왔다. 자신의 차로 스탭들을 숙소까지 안내해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을 프로듀서로 임명하면 내가 덜 미안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일본 현지 프로듀서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리키타케가 제안을 수락한 뒤부터는 ‘부탁’의 관계가 ‘지시’의 관계로 바뀌었다. (웃음)

누구도 몰랐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김은식_조은성 PD와 함께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다. 사회인 야구를 해보니까 우리의 눈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손발은 따라주지 않아 스스로도 한심한 야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 해방 직후 청룡기나 황금사자기 같은 고교야구대회에서 한 경기당 한팀의 실책이 25개 정도 되더라. 수준급 팀들은 실책이 10개 이내고. 요즘의 사회인 야구 수준이 그 당시 한국 야구의 수준이 아 니었나 싶다. 어쨌든 196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야구가 처음으로 일본에 승리를 거둔다.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 멤버 중에 신용균, 배수찬과 같은 재일동포 선수들이 있었다. 결국 재일동포 선수들의 힘을 빌려 일본을 이긴 셈이다. 이후 김성근, 김영덕 감독 같은 분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선수들을 길러냈고, 한국 야구는 빠르게 성장한다. 우리가 그분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받았다.

박지훈_‘내 인생의 절반은 야구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고향이 대구라 삼성을 좋아한다. 올해도 상당히 잘하고 있고. 롯데보다는 항상 잘하고. (웃음) 야구를 이렇게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얘기는 처음 들었다. 젊은 야구팬들 역시 많이 모를 것 같다.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김명준_야구를 통해 현실을 잊고 위안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역사가 현대사와 함께 맞물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하는 사람도 잘 몰랐던 이야기,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잠실에 뜨다

김은식_지난 4월4일, 두산과 SK의 개막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82년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4분이 시구/시타를 했다. 요즘의 시구는 연예인들, 특히 클라라 같은 몸매 좋은 여자 연예인들이 하는 게 대세다. 어떻게 두산 홈경기에서 이분들의 시구를 성사시킬 수 있었나. 게다가 두산은 홈경기에서 남자가 시구하면 지는 징크스도 있어 당시 두산 팬들이 많이 불안해했던 것으로 안다.

조은성_여지없이 그날도 두산이 졌다. 지난해 10월에 82년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멤버 8분을 모시고 오사카의 한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들어보니 그분들이 82년 봉황기대회 끝나고 일본에 돌아가서 한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더라. 감독님이 흥에 겨워 그 자리에서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 때 시구를 성사시키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속으로는 ‘말만 하고 말겠지’ 싶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진지하게 요청하는 거다. 그래서 두산쪽에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시구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 만약 평일 저녁 넥센 홈경기 시구였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꼭 잠실이어야 했다. 82년 고교야구 결승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마침 친 하게 지내던 야구 원로인 임호균 선배에게 이 얘길 했더니 “뭘 고민하냐. 두산 단장이 내 대학 후배다”, 그러시더라. 세달 동안 끌었던 문제가 일주일 만에 해결됐다.

김명준_이 얘기 역시 사실과 다르다. (웃음) 영화가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를 다뤄서 현재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분들 중엔 일본사회에서 일본인으로 알려진 분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것을 밝히고 사생활을 노출하는 것에 민감하다. 인터뷰는 굉장히 많이 했는데 정작 영화에 담을 얘기가 없더라. 그러다가 이분들을 한국으로 모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32년 전 군상상고와 우승을 겨뤘던 잠실야구장에서 82년 멤버들이 시구를 하면 어떨까, 그랬더니 조 PD가 두산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시구를 추진해보겠다고 했다.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해서 동창회 때 얘기를 꺼낸 거다.

박지훈_사건의 전말을 알려면 한명의 얘기만 들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오사카에서 싸게 묵는 법이 궁금하다면…

김은식_5년 걸려서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닌데, 5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김명준_5년이 걸린 데엔 사실 내 탓이 크다. 2011년쯤 영화가 잘 안 풀렸다.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면서 ‘하기 싫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일본에서 3.11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발생 지역에 조선학교가 있다는 걸 알았고, 피해가 크다는 얘기도 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역에도 조선학교가 있었다. 한국에선 아무도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의 피해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들과 조선학교의 지진피해를 돕는 단체(몽당연필)를 만들어 활동했다. 일본 현지도 어수선할 테니 다큐 촬영을 진행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잠시 쉬었다. 그렇게 1년이 훅 지나갔다.

조은성_일본에서 지진 일어났을 때 더이상 영화를 안 하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일도 크게 만들 놈’이란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영화에 투자를 해준 단체가 있는데 원래는 2011년 말까지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면 투자받은 돈을 돌려주게 돼 있었다. 그런데 계약서에 ‘천재지변이 있을 경우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더라.

박지훈_변호사로서 말씀 드리자면, ‘천재지변과 전쟁’ 조항에 해당사항이 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김은식_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

김명준_어설픈 일본어 실력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것. 그리고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일본에서 체류한 것. ‘오사카에서 가장 싸게 묵는 법’이 궁금하거든 내게 물어봐라.

리키타케 도시유키_ 힘든 일 없었다. 제일 싼 규동집 찾아다니며 규동 먹었던 것도 그저 즐거웠다.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생각한다.

조은성_정산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예산이 초과되면 제작사 대표님한테 한소리 듣는다. “일본에서 왜 맥주를 마셨냐. 싼 거 먹어라.”(웃음) 또 사람이 등장하는 다큐에선 섭외가 정말 중요하다. 섭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은식_그렇다면 이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명준_82년 멤버 중 양시철씨가 있다. 82년 봉황기대회 결승 때 6번 완투를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시구 끝나고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 시구를 하러 마운드에 올라서는 순간까지도 걱정이 참 많았다고. 관중이 야유를 보내지 않을까 싶어서. 말랑말랑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10대 때 바다 건너 한국에 와서 야구를 했다. 그런데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이 계속해서 이기니까 사람들이 야유를 엄청 했던 거다. 8강 정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응원해준다. 그런데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이 결승에서 이기는 것까진 용납이 안된다. 그때의 경험이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시구하면서 관중의 박수소리를 듣고선 가슴에 쌓였던 게 다 해소되는 것 같았다더라. ‘영화 만든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조은성_수다를 떠는 사이 벌써 예정된 시간이 다 흘렀다. 날도 더운데 맥주나 한잔씩 하러 가자. 관객 질문은 그때 받겠다. 2차가 준비되어 있다.

박지훈_빼먹으면 안되는 중요한 얘기가 있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개봉할 수 있도록 많이 후원해달라. 펀딩21 사이트(www.funding21.com)에서 후원할 수 있다. 주위에 많이 알려준다면 정말 고맙겠다.

토크쇼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2차 술자리. 남을 사람들은 남아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핑계로 친목을 도모했다. 김명준 감독의 든든한 지원군인 <우리학교> 팬카페 회원들은 물론이고 조은성 PD와 함께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고 있는 사회인 및 영화인들이 두루 모였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통성명을 하고, 영화 얘기 하고, 야구 얘기 하고, 세상사는 얘기 하고, 현재 편집 작업 중인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내년 봄 무사히 개봉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고…. 그렇게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어느 일요일 저녁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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