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사랑과 전쟁’이다. <스파이>는 첩보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에게 필요한 협상의 원칙이 부부 사이에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다. 소말리아 해적에겐 잘도 먹혔던 국정원 요원 김철수(설경구)의 ‘협상 기술’은 그의 부인 영희(문소리)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남편이 국정원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희에게, 철수는 그저 어머니 칠순 잔치조차 제때 챙기지 못하고 아이 가질 시간도 없이 밖으로만 나도는 밉살맞은 남편일 뿐이다. 이러한 철수의 위태로운 이중생활은 그가 북한 핵물리학자 백설희(한예리)의 한국 망명을 돕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우연히 스튜어디스인 영희가 이 작전에 휘말리면서 전환을 맞는다.
권태기를 맞은 부부, 아내에게 접근하는 매력적인 남자(대니얼 헤니), 액션이 가미된 첩보 스타일의 이야기 전개. <스파이>를 보며 제임스 카메론의 20년 전 영화 <트루 라이즈>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근육질 몸매와 농염한 매력으로 중년의 섹시미를 과시했던 <트루 라이즈>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제이미 리 커티스 커플과 달리 설경구와 문소리가 분한 <스파이>의 남편과 아내는 수더분하고 애정 표현에 서툰 대한민국 보통의 중년 부부에 가까운 모습이다. 다시 말해 중년 커플에 대한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스파이>의 목적처럼 보이며, 이는 <트루 라이즈>와 이 영화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스파이>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설정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종종 눈에 띈다. 철수를 비롯한 국정원 요원들은 시도때도 없이 업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고, 영희는 위기의 순간에도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느라 바쁜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주연을 맡은 설경구와 문소리를 비롯해 철수의 국정원 동료들로 출연하는 고창석, 라미란, 정인기 등의 배우들은 평범함이란 단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첩보 장르에 친숙함을 더한다.
인간적인 캐릭터에 액션과 유머, 눈물을 버무려넣는 <스파이>의 방식은 <해운대> <퀵> <7광구> 등을 제작한 JK필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한 작품에서 다양한 장르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그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않을 때엔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영화가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JK의 영화엔 있었던 것 같다. <스파이>에는 이러한 장단점이 고루 섞여있다. 소소하게 웃을 수 있고 가끔은 가슴 찡한 장면들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는 어느 하나 도드라지는 부분 없이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인상을 준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영화지만, 고유의 매력과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