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영화가 긴 기간 이어지는 연애라면 단편영화는 불꽃이 번쩍 튀는 소개팅 같은 것은 아닐까? 여기에 단편영화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이러한 설렘과 반짝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7회를 맞이하는 ‘대단한 단편영화제’가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9월6일부터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단편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은 상대적으로 제작 기간이 짧은 만큼 동시대의 민감한 문제들을 무엇보다 빠르고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단편 경쟁 섹션에 초대된 25편의 작품들 역시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다양한 소재들을 2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내에서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재기발랄하게 담아냈다.
눈에 먼저 띄는 것은 학교 내 폭력문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예민희의 <4교시 체육시간>이 고등학교 내 ‘빵셔틀’이나 ‘왕따’의 문제를 도시락이라는 소재로 코믹하지만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담아냈다면, 오대양의 <가장자리>는 학교폭력에 직면한 어린 주인공의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10대들의 ‘첫경험’의 긴장감을 불쑥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의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윤홍기의 <첫경험>이나, 마포대교에서 서강대교까지 한강 둔치를 따라 자전거를 타다 만난 젊은 남녀의 투닥거림을 담은 <마포에서 서강까지>는 단편영화가 특권처럼 가질 수 있는 ‘찰나’의 묘미를 흥미롭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단편이 가진 제약을 큰 장점으로 잘 살려낸 재치가 번뜩이는 작품도 준비되어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헤어지라며 돈을 건넨다는, 식상한 ‘드라마’적 순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해석해낸 김매일의 <우리 상우와 만나지 말아요>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미래 때문에 다툼을 벌이는 연인의 모습을 만화인 양 시치미를 떼고 보여주는 황호윤의 <한발 뛰기>도 흥미롭다.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려낸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이종필의 <시체의 냄새>, 박근표의 <Prayer Wish>, 안기창의 <우결>은 단편영화에서의 장르란 무엇인가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한편,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들도 있는데 단편영화의 미덕을 잘 살려낸 곽민승의 <밝은 미래>, 원잔디의 <브라자> 그리고 김준성의 <불륜>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번 경쟁작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다. 헤어짐을 앞둔 연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점점 기울어가는 방의 모습으로 담아낸 전용석의 <연인의 방>은 올해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초록이상’을 수상한 클레이메이션 작품으로,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외에도 외계인의 습격을 받은 농장주와 돼지의 모험을 담은 <BURP>와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영된 바 있는 이성강의 <저수지의 괴물>,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집’의 의미를 거꾸로 되짚어 생각해보게 하는 <Home> 등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단편 경쟁 섹션 이외에도 20∼60분의 13편의 중편 작품들이 ‘중편 초청 섹션’에서 소개될 예정이며, 단편영화제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어른들을 몰라요?’(잘 읽어주시길!)라는 테마로 단편영화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다섯명의 중견배우들(진경, 임형국, 박현영, 김상현, 조영진)의 작품을 상영하는 ‘배우 특별전’ 섹션도 준비되어 있다. 또한 개막작인 <남자들>의 감독 남궁선의 5편의 작품이 ‘감독 특별전’ 섹션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가기 위한 습작이 아닌 오롯한 영역으로 지켜내려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야말로 7회를 맞는 이 ‘대단한 단편영화제’를 힘차게 응원해주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