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들 사이에서 문와쳐 윤창업(37) 대표는 “아이디어가 많고, 도전을 즐기는 젊은 기획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1년 영화 전문 투자사 아이엠픽쳐스에 들어가 기획, 투자, 제작 관리, 마케팅, 해외 세일즈를 두루 경험했고, 2004년부터서는 제작사 화인웍스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마음이…>로 프로듀서 데뷔를 했다. 2008년에는 자신의 회사 문와쳐를 창립해 <블라인드>(감독 안상훈/출연 김하늘, 유승호)로 236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 기획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윤 대표는 올해 초 2013년은 ‘안식년’이라며 숨고르기를 선언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현장에 돌아왔다. 한/중 합작영화 <짜이찌엔 아니>, 한/미 합작영화 <더 캐치>, 한/일 합작영화 <핀란드 파파>, 세편의 합작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들고서 말이다.
-“2013년은 쉬어가는 해”라고 말했다.
=지지난해 <블라인드>가 개봉한 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난해 기획개발하며 준비했던 프로젝트들이 여러 이유로 본궤도에 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잠깐 여유를 가져야겠다 싶어서 쉬겠다고 한 거다.
-더 쉬지 그랬나.
=한 3개월 쉬었나? 회사 일은 계속 했다. 빨리 하자는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그러다가 중국에서 5년 가까이 진행해오던 프로젝트가 실마리를 찾으면서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게 <짜이찌엔 아니>인데. 진행은 잘되고 있나.
=중국의 경우, 한/중/미 글로벌 펀드를 운영하는 중국 상해의 TGC Financial Partners 가 투자하기로 했다. 국내는 최대 글로벌 펀드를 운영하는 유니온투자파트너스와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다. 배급은 차이나필름그룹과 중국 CJ E&M에 제안을 검토 중이다. 남자주인공에 한국의 이민호를, 여자주인공에 중국의 양미를 캐스팅하려고 논의 중이다. 누가 감독을 하면 좋을지 역시 고민 중이다.
-2009년 상하이국제영화제 합작 프로젝트 마켓 ‘CO-FPC’(Co-production Film Pitch and Catch) 때 많은 중국 제작사로부터 관심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더라.
=당시 중국 영화인들은 자국의 블록버스터나 무협영화에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고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반면 로맨틱코미디나 멜로 장르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지더라도 자국의 관객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맨틱코미디를 기획하면 중국시장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다 싶어 2008년에 트리트먼트를 준비해 2009년 상하이 마켓으로 가지고 간 거다.
-당시 관련 기사를 보니 곽재용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함께 갔더라.
=아직도 중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가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다. 한/일 합작영화 <싸이보그 그녀>(2008)를 찍은 뒤 재기를 노리던 곽재용 감독님께 <짜이찌엔 아니>를 설명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래서 EP(Executive Producer) 자격으로 함께 갔다. 곽재용 감독님과 <짜이찌엔 아니>라는 로맨틱코미디가 가진 매력 덕분에 미팅을 신청하지 않은 회사가 없을 정도로 마켓 반응이 좋았다.
-중국 영화산업 부동의 파워 1위인 한삼평 대표가 이끄는 차이나필름그룹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차이나필름그룹은 미팅하러 찾아가는 곳이지, 그들이 미팅을 신청하는 회사가 아니다. 미팅 기간이 총 4일이었는데 3일째까지 미팅 신청을 하지 않더라. 마지막 날 차이필름그룹 담당자가 우리 부쓰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만찬회에서 한삼평 대표가 제작 담당 부사장과 합작 담당자를 불러 "같이 하자"고 하더라. 적극적인 그들의 태도가 아직 중국 시장 초짜인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다른 회사들과 계속 미팅을 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차이나필름그룹과의 합작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나.
=많았다. 중국의 다른 제작사들이 그러더라. 차이나필름그룹과 함께하면 수익 배분에서 다 빼앗긴다고.
-합작 방식과 관련해 차이나필름그룹이 제안한 건 뭔가.
=내가 차이나필름그룹의 고용 프로듀서로 들어가 영화를 진행하자는 게 그들의 첫 제안이었다. 거절했다. 내가 원했던 그림은 회사 대 회사의 거래였다. 그외 중국 관객을 타깃으로 한 시나리오나 한국과 중국 배우의 캐스팅 같은 문제는 빠르게 진행됐다.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
=처음에는 차이나필름그룹으로부터 영화의 지분 3%를 제안받았다. 소속 감독 중 가장 ‘핫’한 닝하오가 3%를 받는다는 말과 함께. 거절했다. 다시 8%를 제안하더라. 물론 중국의 8%와 한국의 8%은 같은 개념의 지분율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계약서 내용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투자배급사로부터 지분 40%를 받는 것보다 지분이 적어 더 올려달라고 요구 했다. 향후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그 금액이 기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쉽게 양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요구한 게 8%로 하되 개봉 후 박스오피스 5천만 위안(약 90억원)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15%로 상향 조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제안은 검토하기로 했고 나 또한 트리트먼트가 아닌 시나리오를 보여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 <블라인드>를 진행해야 했고, 시나리오 작업이 늦어지면서 1년 반이란 시간이 흘러버렸고 더 이상 차이나필름그룹이랑 진행하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아 보였다.
-차이나필름그룹의 하차로 잠깐 중단됐던 <짜이찌엔 아니>의 합작 진행이 2011년 중국 CJ E&M의 등장으로 재개됐다. 중국 CJ E&M는 왜 이 작품을 함께하자고 하던가.
=중국 CJ E&M가 중국에서 진행한 첫 영화가 <소피의 연애매뉴얼>이었다. 주연을 맡은 장쯔이가 프로듀서로 진행한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중국 CJ E&M가 투자만 했고, 실질적인 제작 진행은 장쯔이쪽이 맡았다. 개인적인 견해로 중국 CJ E&M으로서는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제작할 작품 라인업들이 필요했고 당시, 내가 중국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개발한 한중합작 프로젝트들인 <짜이찌앤아니>, <복불복> 등이 괜찮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것도 있고.
-<무사>처럼 한국영화가 중국에서 촬영하는 로케이션 협업 방식, <위험한 관계>처럼 허진호 감독이 중국 스튜디오에 고용되어 중국 배우, 스탭과 함께 영화를 찍었던 인력 진출 방식, <연애합시다>처럼 김성수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나비픽쳐스가 중국의 폴리보나, 홍콩의 선드림과 함께 투자해 중국 소설 판권을 구입한 뒤 중국 배우들과 만든 합작 방식 등이 있었다. <짜이찌엔 아니>는 어떤 합작 방식으로 진행했나.
=보통은 국적이 다른 두 회사의 자본, 배우, 시나리오가 50대 50에 준하는 비율로 섞여 있는 방식이 합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짜이찌앤 아니>는 한국의 프로듀서가 중국 관객을 타깃으로 기획, 제작하는 99% 중국 영화 프로젝트다. 창작자로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보다 많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다.
-<블라인드> 이후 한국영화를 제작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왜 중국시장을 두드리는 건가.
=중국시장이 가진 매력이 있다. 일단 규모가 크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가 전세계 관객을 타깃으로 삼는 것처럼 중국의 많은 관객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중국시장을 온몸으로 부딪혀보니 어떻던가.
=처음에는 중국을 발판으로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중국시장에 제대로 들어가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 영화시장이 2020년이 되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크린 수, 관객수, 제작사 수 등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기획력, 마케팅, 기술력 등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영화계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답을 미국에서 찾으려고 한다. 최근 <마르코 폴로> <트랜스포머4> 같은 중/미 합작 방식이 늘고 있는 것도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는 할리우드와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시장에 제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중/미 합작 방식이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만 들어가면 힘들다.
-마침 한/미 합작영화 <더 캐치>의 시나리오도 진행하고 있다.
=낚시영화다. 미국은 전세계 최고의 낚시산업 국가다. 그래서 매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낚시대회가 열린다. 50개 주의 챔피언들이 출전해 자웅을 겨루는 왕중왕전 같은 대회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낚시를 연마하는 젊은 주인공이 이 대회에 출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떻게 진행 중인가.
=<더 캐치>는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국제공동제작 기획개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한/미공동제작 프로젝트 다섯편 중 한편이다.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와 미국 현지 제작사를 연결해주는 ‘Ko-Production in LA’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해 <워킹 데드> 시리즈를 기획한 데이비드 알퍼트, <라스트 스탠드>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에드워드 휘로부터 시나리오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조언을 참고해 9월 말까지 수정한 뒤 10월에 번역을 마무리해 시나리오를 미국에 돌릴 계획이다.
-일본 합작영화 <핀란드 파파>도 있다.
=직접 기획한 <짜이찌엔 아니>나 <더 캐치>와 달리 <핀란드 파파>는 원영진 작가로부터 개발 제안이 들어온 프로젝트다. 원 작가는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해외시장에 관심도 많은 사람이다. <핀란드 파파>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다. 내년 상반기 촬영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더 캐치>와 <핀란드 파파>는 일을 크게 벌이기 위한 목적보다 여러 방식의 합작을 경험하고 싶어 공부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다.
-2001년 영화 전문 투자사 ‘아이엠픽쳐스’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3년 동안 기획, 투자, 제작관리, 마케팅, 해외 세일즈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한 게 많은 도움이 됐겠다.
=당시 아이엠픽쳐스는 소수정예로 구성된 회사라 이것저것 다 해야 했다. 처음에는 마케팅팀에 있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없던 시절이라 서울 시내의 극장들에 일일이 전화를 해서 관객수를 조사해 ‘위클리 박스오피스’를 월요일마다 만드는 일을 했다. <씨네21> 같은 언론사나 여러 제작사에 보내주기도 했다. 마케팅팀에서 1년을 보낸 뒤 투자제작팀으로 옮겨 배급 관리, 판권 관리, 투자 기획, 투자 심사를 맡았다. <영어완전정복> <늑대의 유혹> <범죄의 재구성> 같은 영화들이 그때 진행했던 작품이다. 되돌아보면 그때 그 경험이 프로듀서 생활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2004년 화인웍스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마음이…>(2006)로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아이엠픽쳐스를 나온 이유가 뭔가.
=프로듀서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학창 시절 연출이나 시나리오를 공부한 것도 좋은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다. 화인웍스가 창립할 때 김민기 대표님께 “프로듀서가, 기획이 중심이 되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김 대표님 역시 내 말에 힘을 실어주셨다. 당시는 제작사에 기획실이 없어지는 추세였는데, 화인웍스는 역으로 ‘콘텐츠 프로듀싱팀’이라는 이름의 기획실을 꾸렸다. CJ엔터테인먼트가 기획개발팀을 꾸릴 때 많이 참고했을 정도로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의 콘텐츠를 개발했다. 영화 <두 얼굴의 여친>, 영화 채널 OCN과 함께 제작한 ‘이브의 유혹 4부작 시리즈’ <좋은 아내> <그녀만의 테크닉> <키스> <엔젤> 등 여러 작품을 그때 만들었다. 프로듀서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소중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4년 간의 화인웍스 생활을 정리하고 2008년 문와쳐를 설립했다. 좀더 자신의 색깔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나보다.
=좋았던 기억도 많지만 화인웍스 때 안타까웠던 건, 도전과 시도를 늘 했지만 항상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획 프로듀서가 아무리 기획을 잘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찍지 못하면 애초의 기획 방향과 다른 작품이 나온다. 기획과 제작이 분리된 구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이름대로 창업할 운명이었나보다. 사업을 벌이는 수완도 좋은 것 같고.
=쉬운 길을 두고 계속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데 사업 수완이 좋은 게 아니지. 고생할 이름이지. (웃음)
-다행스럽게도 창립작인 <블라인드>가 흥행했다. 이후 계속 이런저런 프로젝트도 잘 진행하고 있는 것 같고. 만족스럽나.
=회사를 창립한 뒤 지금까지 숨쉴 틈 없이 힘들었다. 3년 동안 <블라인드>를 준비하면서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줄지, 어디서 돈을 빌릴지 매달 고민이 많았다. 이제는 만족스럽다기보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윤창업 대표를 인터뷰하기 일주일 전, 연남동의 한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일주일 뒤에 인터뷰를 하게 될지 그도, 기자도 모른 채 오랜만에 술이나 먹자며 만난 자리였다. 술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합작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던 그는 “합작이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 덕분에 <블라인드>로 붕 떠 있던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게 됐다. 반성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말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참 남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