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편의점 인간관찰기
2013-09-27
글 : 윤혜지
사진 : 오계옥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촬영현장

이바울, 이주승, 김새벽, 안재민, 정혜인, 신재하 등 독립영화의 샛별들이 대거 출연한다. 지쳐 있다가도 노래가 흘러나오면 제각기 큰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입고 있는 유니폼은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지금은 폐업한 모 편의점의 예전 유니폼을 본떠” 의상팀에서 자체 제작했다.

판타지오픽쳐스에서 기획한 배우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 공명(왼쪽)은 군입대를 앞두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기철을 연기한다.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유영은 사교적이고 다혈질인 하나를 맡아 기철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선남선녀의 동상이몽이 재미있는 장면이다.

김경묵 감독은 편의점의 하루를 스쳐가는 여덟명의 청년들을 날마다 한두명씩 차례로 관찰하고 있다. “매일 새로운 배우들과 작업하다보니 편의점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출연배우들이 많으니 정해진 분량만큼은 하루에 다 찍어야 한다. 해가 뉘엿한 오후 4시가 되면 “말할 수 없이 초조해져 오케이를 남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단다.

신재하가 연기하는 기철의 연인 현수(왼쪽)는 참여하는 오디션마다 번번이 낙방하는 배우지망생이다. 간식을 담아준 봉투엔 기철의 애정도 담뿍 담겼다. 둘 사이에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현수와 기철이 서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 숨쉬는 이 시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많은 기쁨과 한숨들이 뒤섞인 이곳에서~.” 경쾌한 멜로디 사이에 이 시대 청춘들의 한숨이 섞인 듯하다.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채 군무를 추는 젊은 배우들의 천진한 얼굴도 어쩐지 벌써부터 고단해 보인다. 김경묵 감독이 “이십대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연출하게 됐다”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아르바이트생, 손님, 사장 등 하루 동안 편의점을 오가는 인물들이 겪는 해프닝을 다뤘다. 용인의 한 편의점을 섭외해 한창 촬영 중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좁은 편의점 안에 스탭과 배우, 장비와 상품들이 한데 엉켜 나름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중인 기철(공명)이 현수(신재하)를 위해 봉지에 간식을 담아주는 장면을 촬영할 차례다. 공간이 협소한 탓에 감독과 강국현 촬영감독은 매번 새로운 앵글을 만들어보느라 바쁘다. 스탭들은 감독의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블록을 조립하듯 번쩍번쩍 매대를 들어 옮기고 새로이 트랙을 깔아 동선을 재정비한다.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쭉 이동하자 매대 사이사이에 서 있던 스탭들이 두더지 게임 속 두더지들처럼 라면과 과자들 사이로 쏙쏙 몸을 숨긴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감독도 구석에 몸을 구겨넣을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분주한 스탭들의 시간과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는 두 배우, 공명과 신재하의 시간이 제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저녁이 깊어가고, 영화의 도입부인 군무 장면 촬영이 남았다. 각자의 스케줄로 바쁠 여덟명의 배우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본 촬영에 앞서 수차례 리허설을 반복한다. 과연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연기할 땐 여느 신인배우와 다르지 않더니 춤추는 장면에선 하나 역을 맡은 헬로비너스의 유영이 단연 돋보인다. 안무를 틀리거나, 박자를 놓치기도 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유영은 한시도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정확한 동작으로 긴 팔다리를 쭉쭉 뻗는다. 거듭되는 연습에도 지친 기색 없이 내내 생글생글 웃는다. 컷 소리가 나자 스탭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유영이 살아 있네~!” 성준 역의 안재민을 향해 감독도 한마디 보탠다. “가만 보면 춤은 다 틀리는데 재민이는 표정만 살아 있어~.” 안재민도 지지 않는다. “본 촬영을 위해 에너지를 아낀 거죠!” 영화는 현재 절반 정도 촬영을 마쳤고, 내년 상반기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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