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정지영, 백승우] 금기천국, 후진민국
2013-09-13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메가박스에서 상영 중단 통보받은 <천안함 프로젝트> 제작자 정지영, 감독 백승우

<천안함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에 빠졌다. 개봉 이틀 만인 9월6일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가 상영 중단 통보를 해왔다. 심의를 통과한 영화가 극장쪽의 강제적 요구로 내려진 초유의 사태다. 9월9일 오전, 영화계 각 단체들은 상영 중단 사태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영화인대책위원회도 발족했다. 기자회견 다음날인 10일 오전, 제작사인 아우라픽쳐스 사무실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자 정지영 감독과 연출을 한 백승우 감독을 만났다. 그 시각, 메가박스는 상영 중단을 번복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이러니하게도 상영 중단에 대한 관심에 힘입은 영화는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9월12일 현재 영화인진상규명위원회는 메가박스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누적관객수 7361명으로 현재 7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예술영화관으로 상영관 확대를 모색 중이다. 침몰 위기에 빠진 <천안함 프로젝트>의 구명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회견 이후, 메가박스가 상영 중단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백승우_관객이 그러더라. 메가박스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낸 티켓값으로 운영하는데 관객의 의견을 무시하고 저쪽 이야기만 들었다는 게 화가 난다고. 메가박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정지영_그들 입장에서 압력을 행사한 단체를 밝히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 ‘아우라 픽쳐스와 영화계에는 정말 미안하다’라고 한다면 우리도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 나오는 건 정말 불편하다. 큰 조직이니 압력이 왔다고 해도 공론화하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고 본다. 한데 알아서 넙죽 엎드린 거다. 그런 일을 받아들이다보면 평생 거기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도 승소한 영화에 대해 극장이 제재를 가한 초유의 사건이다.
=정지영_윗선에서 전화 와서, ‘이 영화 만들 거야?’라며 협박하던 시대가 있었다. 말 안 들으면 바로 세무감찰 들어오니 못 만드는 거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구시대적인 방식이 통용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 사건들이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백승우_이 영화에 이런 사건이 벌어지다니 말이 되는가 싶다. 나한테 이런 이슈를 불러오는 능력이 있었나 싶더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본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상이 이걸 부각시킨 모양새가 됐다.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1985>도 마찬가지다. 똑바로 가고 있었는데, 마치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부각되는 것. 이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리더층

-기자회견 이후에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 상영을 저지하려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정반대가 된 셈이다.
=백승우_어제 전국 4개관에서 상영했는데, <천안함 프로젝트>가 다양성영화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이거 하나는 잘했다 싶더라. 작은 영화관들을 찾지 않던 관객이 이 영화 때문에 그런 곳들을 찾아다녔다니. (웃음) 그 점에서 참 답답하다.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어느 분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시더라. 관객이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이유,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하는데 그걸 간과한 거다.
정지영_메가박스가 간판을 내린 건 분명 그들에게도 손실이다. 그렇다면 소란을 일으킨 대상을 고발해야 한다. 수사를 해야 하고 추적을 해야 한다. 메가박스가 입을 닫으면 그냥 묻힐 수밖에 없다.

-상영 중단 사태가 불거지자마자 영화인회의, 영화감독조합, 영화제작가협회, 프로듀서조합, 촬영감독조합 등 12개 단체가 모여 ‘영화인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했다. 전에 없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줬다.
=정지영_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이 문제는 힘이 빠져버린다. 그간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한-미 FTA 등의 사안으로 투쟁을 해왔는데, 이후로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 MB 정부의 영화 정책 실책에도 효과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으니, 잘못하면 앞으로 5년도 영화계가 풀 죽은 채 길들여질 우려가 크다. 영화계 내부적으로 이런 판단이 컸던 것 같다.
백승우_누가 봐도 이 문제는 기본적인 자유의 침해다. 그 위기의식 때문에 쉽게 공감했던 것 같다. 분명 이걸 결정한 사람은 극장쪽에 중요한 사람일 거다. 우리 사회가 고수해야 할 것을 망각할 정도로 자기 검열 수준이 바닥이라는 걸 입증한 사건이다. 이 문제는 <천안함 프로젝트>나 백승우 감독, 제작자 정지영의 문제가 아니다. 상영관과 제작사라는 갑을의 관계에서 갑이 일방적으로 간판을 내리면 을은 당하기만 한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메가박스쪽은 이번 상영 중단이 배급사와 상의 뒤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상영 중단을 통보해왔나.
=정지영_메가박스쪽은 ‘협의’라는 말을 쓰던데,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원래 이 영화는 배급을 하겠다는 곳이 없어서 우리가 자체 배급을 하기로 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배급 노하우가 전혀 없어서 엣나인쪽에 자문을 구했었다. 그러니 메가박스가 협의했다고 하는 곳은 우리가 아니라 엣나인의 정상진 대표다.

-다른 상영관과 달리 유독 메가박스가 상영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지영_메가박스는 큰 기업이다. 기업은 조사받을 것이 많은 곳이지 않나. 난 지금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쓰고 싶다. 보수단체가 항의했다고 극장이 간판을 내린다는 판단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상당이 힘 있는 사람이 화를 냈을 거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냐, 이러고도 장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이런 협박을 받으니 무서워서 얼른 내린 걸 거다. 후유증은 생각도 안 하고 말이다.

-메가박스는 CGV와 롯데가 정치적 민감함을 이유로 상영을 고사했을 때, 유일하게 문을 열어준 멀티플렉스다. 지금 분위기로 볼 땐 상영 결정이 더 놀랍다. 그 때문에 상실감이 더 클 것 같다.
=정지영_CGV나 롯데가 꺼려하는 영화를 선뜻 상영해준 거다. 특히 CGV의 무비꼴라쥬관은 공적 자금을 받으면서도 독립영화,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영화의 상영을 거부했으니, 메가박스에 상당히 고마웠다. 물론 그 고마움이 며칠 가지도 않았지만. (웃음)

-CGV나 롯데에서 상영을 거부한 배경에도 정치적 소재에 대한 우려가 있었나? 상영을 철회한 메가박스보다 애초 배급을 하지 않겠다고 한 그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시선도 많다.
=정지영_처음엔 저예산 다큐멘터리영화에 손님이 들겠냐는 식으로 핑계를 대더라. 그래서 솔직히 상영 못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라고 하니, 아무래도 껄끄럽다고 하더라. 난 CGV나 롯데의 시선이 그렇다기보다 한국의 리더 그룹의 사고가 그렇다고 본다. 한국 관객이, 국민이 어리석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위험한 영화다라고 판단을 하는 거다.
백승우_<천안함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가장 큰 핵심 중 하나가 이 작품이 국론 분열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시선에 대한 인정이 없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는 판단이다. 국회에서 증인이 나와서 선서도 안 하고 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이런 사건들을 보면 얼마나 우리 국민이 우습게 취급되는지 알 수 있다. 머리 써서 교묘하게 몰래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젠 아예 드러내놓고 국민을 무시한다.
정지영_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선서를 안 하는 배짱과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결국 이번 사건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국민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초헌법적인 인간들이 지금 이 사회의 리더층이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개봉하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천안함 유족들이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위기도 있었다.
=정지영_이미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 영화의 운명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게 우려는 하지 않았다. 영화도 안 보고 가처분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하고, 가처분 신청 때도 영화를 안 보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던 것 같다.
백승우_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정지영 감독님이 새삼 존경스럽더라. 어떻게 이런 외부적인 풍파들을 견뎌내실까. 다행히 세상이 재밌는 게 아픈 만큼 치료제가 생긴다. 관객을 보면 힘이 생긴다. 내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니까, 외부적인 어려움은 헤쳐나가게 된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획단계에서도 충분히 외압이 있었겠다는 의심이 든다. 혹시 밝히지 않았던 민감한 충돌이 있지는 않았나.
=정지영_우리가 홍보를 하는 거 봤나? 우리는 홍보를 안 한다.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1985> 때도 홍보를 안 했다. 뿐만 아니다. 스탭, 배우들에게도 영화 촬영 끝나기 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해둔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미리 알려졌다면, 분명 완성도 못했을 거다.
백승우_영화 만들고나서 정지영 감독이 직접 연출하셨다면 어떤 버전이 나왔을까 생각해봤다. 좀더 유머러스하고 쉬운 영화, 완성된 지금 영화에 부족한 강한 이야기도 넣었을 것 같더라. 난 사실 전달에만 주력했고, 거짓말하지 말자를 모토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다양한 내용들이 없어서 섭섭해하는 관객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사태를 겪고나니 내가 만들길 잘했다 싶다. 5년 뒤에 이 영화를 본 관객이, “고작 이걸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피웠다는 거야!”라고 할 게 분명하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의 역사성을 가지게 되는 거다.
정지영_백승우 감독이 상당히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어서 소송 때도 재판부에서도 진지함을 산 것 같다. 내가 하던 방식으로 만들어서 이 문제를 비꼬았으면 “저 문제 감독, 또 저러는구나” 했을 텐데. 진정성 면에서 훨씬 더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다.

-<부러진 화살>은 입소문으로 상영관이 확대된 경우고, <남영동1985>는 상영관이 줄어든 경우다. 정치적 사안의 문제를 다룬다면 상영관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정지영_<남영동1985>의 상영관이 줄어든 건 정치적 소재의 문제로 포장해선 안된다. 처음에는 관을 많이 확보했는데, 관객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서 줄어든 경우다. 나도 그걸 충분히 각오했었다. 관객이 불편하고 아파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 숫자가 100만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34만명에서 그친 거다. 반면 <천안함 프로젝트>는 불편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정부 발표를 못 미더워하는 나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천안함 이야기를 하는 것만도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법적 자문을 구한 상태다. 영화인 상생 협약(영화 상영을 최소 일주일 보상하는 제도)도 있는데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상영을 재개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가 어느 정도 있는 건가.
=정지영_영화인 상생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정도의 약속이다. 그래도 법적 판단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알아보고 있다. 상영과 관련한 계약서는 없는데, 변호사한테 알아보니 구두계약도 구속력은 덜하지만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 일단 업무 방해를 했다는 개인을 찾아가서 수사하는 게 첫 번째일 거고, 메가박스가 일방적으로 관객이 드는 걸 막은 거니, 민사 소송을 통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대응이 중요하다.
=정지영_일단은 주무부처인 문화부가 이 부분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어떤 개인이든 단체든 압력을 통해서 영화를 내린다는 건 우리 영화산업의 허약한 체질을 나타내는 부끄러운 예다. 문화부가 행정력을 발휘해서 메가박스쪽이랑 합의를 해야 한다. 메가박스가 혼자 짐 지기 어렵다면, CGV나 롯데도 같이 참여해달라고 하는 게 더 훌륭한 조치가 될 것 같다.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영화계가 활짝 웃으면서 자신감을 얻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여론화를 통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들을 압박하는 거다.
백승우_메가박스는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극장쪽에도 일단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안 좋은 사례로 남지 않도록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관객의 요구는 뜨겁다. SNS를 통해 <천안함 프로젝트> 보기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메가박스가 상영을 계속 거부한다면, 장기전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정지영_월드컵 때처럼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상영하자는 의견을 나도 들었다. 그렇다면 입장료가 아니라 성금을 받는 식이 되어야 할 거다.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극장에서 도저히 상영할 수 없다고 하면, 몇 개관에서만 장기 상영을 할 예정이다. 지방 같은 경우 공동체 상영이라는 대안도 있다.
백승우_어쩌면 이 영화의 운명이 그런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감독님이 애초에 이 영화 기획할 때 돈을 벌자고 그런 것도 아니었고.

-이런 분위기라면 <천안함 프로젝트2>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정지영_다음 작품은 좀 말랑말랑한 멜로드라마 한편 해보려고 한다. 나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웃음) 그런데 그러려니 지금 당장 만들 게 너무 많아서 큰일났다.
백승우_이번 사태가 불러일으킬 후폭풍이 엄청나다. 기자회견에서 이준익 감독이 말한 것처럼,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찍을까가 아니라 찍어도 되나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작품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소재나 이야기 자체가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 청록파 시인들처럼 할 말을 돌려서 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심각하고 화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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