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폭력의 다양한 양상 <애프터 루시아>
2013-09-25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요리사인 로베르토(헤르난 멘도자)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 알레한드라(테사 라)와 함께 멕시코시티로 이사한다. 로베르토는 새 직장을 구하고 일상을 이어가지만 아내의 빈자리는 작지 않다. 알레한드라는 새 학교의 친구들과 함께 별장에 놀러가고 술에 취해 호세와 잠자리를 같이한다. 호세는 그것을 휴대폰으로 촬영한다. 동영상은 유출되고 알레한드라는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남자아이들은 알레한드라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비디오를 찍고 여자아이들은 창녀라고 욕하며 그녀의 머리를 자른다.

영화는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개인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 등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개인 혹은 집단으로 알레한드라에게 가하는 폭력 외에도 학교나 보험회사, 경찰 등 사회 제도나 시스템도 부녀에게 폭력으로 다가오고 로베르토는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는 그러한 폭력을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게 만든다. 영화는 컷을 잘게 나누지 않는다. 거의 모든 숏에서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고정되어 있고 테이크 또한 길다. 미디엄 숏이나 클로즈업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로베르토가 운전하는 것을 뒷좌석에 앉아서 장시간 지켜봐야 한다. 그 자리와 그 거리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것은 관객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영화는 폭력이라는 화두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불편하고 무섭다. 얘기하는 바는 묵직하지만 영화는 감정을 절제하고 아주 건조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정들은 많은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기쁨이나 슬픔 등 우리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만들어진 표현들이 아니다. 로베르토는 짐 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그것을 목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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