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은 한 어린 소녀가 유괴당해 3096일 동안 감금됐던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 당시 10살이던 나타샤(안토니아 캠벨 휴즈)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가던 중 아무도 모르게 한 남자에게 유괴당한다. 지하실을 개조해 만든 작은 방에 갇힌 그녀는 이제 외부와 차단당한 채 남자의 말에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8년 넘게 이어진 이 끔찍한 날들 동안 그녀는 과연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그리고 과연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사건의 피해자인 나타샤 캄푸쉬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니만큼 <3096일>의 상당수 장면은 필연적으로 아동학대와 신체적, 성적 폭행을 다룬다. 하지만 감독은 단지 폭력의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비교적 건조한 화법으로 작은 디테일에 주목하며 피폐해져가는 소녀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폭행당하는 소녀의 모습보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역할극을 하거나 자신을 가둔 남자에게 받는 작은 선물에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는 데 더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빚어내는 감정은 악에 대한 혐오와 공포보다는 먹먹한 슬픔에 더 가깝다. 자신이 유괴당한지도 모르던 순진한 아이가 이상한 방식으로 조금씩 현실에 적응해가는 모습은 어떤 학대보다 더 날카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비쩍 마른 소녀가 한번씩 비치는 밝은 미소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처럼 복잡한 감정과 이미지의 결을 애써 쌓았음에도 원작을 의식한 탓인지 그 모든 이야기를 주인공의 단순한 생존담으로 봉합한 것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배우의 열연과 함께 만들어진 한 인간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둠의 심연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거의 두 시간 동안 한 인물의 삶을 보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여전히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