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낭만에 대하여
2013-10-04
글 : 정예찬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김영애의 첫 단편영화 <실연의 달콤함> 촬영현장

“얘, 아줌마랑 쓰레기 버리러 갈래?” 묘하게 자신과 닮은 작은 어항 속 금붕어 한 마리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금붕어조차 그녀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하다.

식구들 밥 챙겨주는 것도 잊은 채 최백호의 노래에 푹 빠져 있는 주인공 영애. 아들(윤용혁)은 “엄마, 밥 안 줘?”라고 퉁명스레 말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보자 금세 화색이 돈다. 그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닮았다.

정성껏 차려낸 밥상이건만 남편도 아들도 찌개가 식탁에 오르기도 전에 각자의 자리에 앉아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사라진다. 텅 비어버린 식탁. 그 쓸쓸한 공간에 홀로 앉아 영애는 밥에 물을 말아 입속으로 밀어넣는다.

“모니터로 보면 정말 못된 아빠 같아.” 모니터를 통해 배우들의 연기를 확인하고 있는 정현철(왼쪽) 감독과 정훈 프로듀서가 극중에서 아빠를 맡은 박준연 조감독의 연기를 칭찬한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8월23일,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흘러나오는 파주 헤이리의 한 촬영장. 분주하지 않은 현장이야 있겠냐마는 정현철 감독이 연출하는 단편영화 <실연의 달콤함>의 촬영장은 유난히 바빠 보인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매 순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싶어 하는 감독의 열심은 물론이고, 하루 안에 모든 촬영을 끝마쳐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편영화 촬영이기에 감독은 스톱워치까지 손에 쥐고 초 단위로 시간을 재며 촬영에 임한다. “컷! 다시 한번 갈게요. 지금보다 1/3만 더 빠르게.”

영화는 분리수거를 하러 나간 가정주부 영애(김영애)가 이제 막 헤어지려는 연인을 발견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촬영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로 영애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집 안에서 겪는 일들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인서트 숏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 영애가 등장하지만 입으로 내뱉는 대사는 별로 없다. 대사보다는 <낭만에 대하여>의 노랫말이 영애가 겪고 있는 쓸쓸함을 대신 말해준다. 감독은 간결한 대사만큼이나 “최소한의 소품으로 군더더기 없는 화면을 만들어 달라”고 모든 스탭들에게 주문했다. 이에 김태환 조명감독은 “조명의 톤이 아닌 상황만으로 우울한 느낌이 표현되기를 원했다”며 감독의 의도에 맞게 조명을 설치한다.

<실연의 달콤함>은 역량 있는 신예 감독을 발굴, 지원하기 위해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진행하는 ‘EOS Movie Project: E-Cut 감독을 위하여’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43년차 연기 경력의 김영애가 처음으로 출연하는 단편영화이기도 하다. 정 감독의 시나리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영애는 “항상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이야기 속 ‘영애’의 모습이 그동안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보다 가장 자연인 ‘김영애’와 닮아 있었다”라고 답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잊은 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중년 여성들에게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영화의 후반에서 영애는 젊은 연인의 이별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을 바라보는 영애의 모습을 통해 가슴 아픈 실연의 순간조차 달콤했던 추억으로 회상하는 이 시대의 어머니를 그리고 싶었다”고 정 감독은 덧붙였다.

<실연의 달콤함>은 9월26일 개막하는 제5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김새론이 출연하는 <참관 수업>(감독 임종우)과 함께 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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